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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서의 우리 上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번역자를 한없이 존경스럽게 만들던 책이다. 물론 번역이 잘 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이렇게 읽기조차 지루한 책을 끝까지 번역해 내었다는 인내심이 존경스러웠다는 것이지... 역자와 작가는 다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자신의 아이--그것이 못난이인지, 지루한 아이인지, 매력이 없는 아인지, 내진 형편없는 졸작인지 알 길이 없을 수도 있다. 만약 자기 머리속에서 그런 것들을 알아차릴 센서가 작동했다면 그 작품을 모든 사람들이 보게 출간할 이유가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번역자는 다르다. 문학을 좋아하고, 외국어를 알고, 좋은 책을 소개하는데다, 돈까지 번다는 생각에서 책 번역을 시작했다고 치자. 그런데 막상 맡겨진 책이 읽어보니 재미 있지도 않고, 말이 안 되는 이야기로 줄곧 횡설수설 하는데다, 책과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로 내내 헤메기만 한다고 해보자. 문학과 돈에 대한 왠만한 애정이 있지 않고서야 그걸 번역한다는게 쉽지많은 않을 것이다. 욕을 하면서도 끝낸다면 다행 아니겠는가. 예를 들면 이 책처럼 말이다. 그렇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것도 아니고, 단지 역자가 완역을 해냈다는 것에 감동을 받고 말았다. 완독조차 욕이 나왔으니 말이다. 물론 상 권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나 중권이 이르러 한없이 헤매려는 듯 보이더니 하권에 가서도 본격적으로 헤메기만 하고 있더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신사납기 이를데 없는 책이었다.
그렇다보니 책을 덮는데 번역자 이름을 다시 한번 안 들여다 볼 수가 없더라. 김 소연이시라는 분이라고 한다. 대단하다고 칭찬을 안 해드릴 수 없다. 나라면 이런 책 억만금을 준다고해도 완역 못한다. 돈도 다 필요없으니, 그냥 다른 사람 알아보라고, 번역을 맡긴 분에게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혹 돈이 궁해서 무엇이라도 하고픈 사람이 있다면--톰 소여의 재치를 잠깐 빌려와 대단히 근사한 프로젝트라고 입에 거품 문뒤 슬쩍 떠넘기기 작전을 구사할지 모른다. 하여간 반색을 하면서 희희낙낙 군침을 삼키면 번역하게 되는 책은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다른 리뷰나 이 책의 정보란을 뒤져 보시길...추리 소설이라고는 하나, 등장인물들이 추리는 뒷전이고 선승 놀이를 줄곧 하고 있다는 사실만 부연해 드리겠다. 게다가 밝혀지는 진실이라니... 참, 짜증이 확 밀려 들었다. 세세하기는 또 왜 그렇게 세밀한지...일본 작가의 소설 아니랄까봐 말이다. 그렇게 세세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해서 책이 더 재밌어 지거나 구성이 탄탄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뭐 리뷰를 길게 쓸만한 책은 아니었고 하니 이쯤해서 접기로 하고, 단지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든 의문 하나를 적어본다.
정말로 궁금한 것이었는데, 과연 일본 사람들은 근친상간이 어쩌다 일어나 별일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 책의 뉘앙스로 보면, 그저 내가 과거에 잘못했는데 , 이제 잘못을 깨달았으니 다음번엔 제대로 대해 주겠다 그런 정도니 말이다. 정말로 그래? < 삼수탑>에서는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더니만, 여기선 근친상간이 어쩌다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눈살 찌프려 지는 설정이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밝혀내는 분야라고 하지만서도, 정말로 그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정서에서만큼 혐오하는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일본 다운 어떤 문화 감수성이 있는가 싶기도 하고. 일본인들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근친상간도 어쩌다 보면 할 수도 있는 거라고 말이다. 나중에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본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는 것일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되질 않아서 한자 적고 간다. 언젠가는 그 의문에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