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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을 " 명예" 라고 지었던데, 다 읽고 난 지금에도 왜 제목이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작가가 젊은 나이에 걸머진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쓴 책이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지금 자신에게 존재하는 명예가 한낮 허명이기에 이 책을 빌어 다 없애 버리고 싶다는 의미일까. 만약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 지은 이름이라면 "민폐"라는 이름으로 제목을 짓는게 적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보다 더 민폐일 수는 없다 싶을 정도로 한심스런 책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정신만 사납던지,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정신을 쏟은 나머지 정신분열증이 걸렸던 것이 아닐까 추측이 될 정도였다. 어디를 보나 심난해, 총체적으로 정신 사나워, 이야기 전개는 어이없어로 귀결되는, 한마디로 대단한 책을 쓰겠다는--보다는 특이한 혹은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여 보일--작가의 욕심이 지나치다보니 프로젝트 자체가 하늘로 올라가버린 결과물처럼 보였다. 쉽게 말해 실패작!
뒷 표지에 '지금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하세요, 인생은 아주 빨리 지나가고,잊히고, 사라진까요! 그러라고 휴대전화가 있는 겁니다!'라고 쓰여져있다.
책을 읽고 난 지금 이 문구를 읽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다른건 몰라도 이 책의 작가인 다니엘 켈만은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아니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하라고 다그치고, 인생이 빨리 지나가지 낭비하지 말라고 부추기는 인생 찬미자가 아니란 말이다. 재치가 뛰어날 지는 모르나, 전형적인 서양 사람답게 냉소적이고 냉담하며 다시 희박한 정情의 소유자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인 기준이 의하면 싸가지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듣지는 않을까 싶은....뭐, 그건 내 인상에 그렇다는 것이고. 하여간 저 문구를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선전문구보단 휴대전화 광고 문고로 썼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저렇게 촌스러운 문구가 광고 문안으로 쓰여졌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게 이 책의 성격보다는 더 알맞는 문장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휴대전화를 광고하기 위한 책일까? 다들 휴대전화 하나씩 장만하시라고, 그래서 아는 사람 모두에게 전화 한통씩 넣어주시라고,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일까? 차라리 그랬다면 나았을 것이다. 작가는 유치한 쪽을 택하느니, 정신 사나운 쪽을 택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인간적인 정? 그딴거 작가는 모른다. 그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과 냉정함과 가식과 위선과 배신과 광기와 비이성만이 그의 관심사일뿐. 하여 그가 창조해내는 사람들이 다들 정상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정신 나가기 일보 직전인 사람들, 구원을 바라기에도 억만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통에 그저 현재 비정상임을 틀키지 않고 오늘만을 보내면 다행인 사람들뿐이다. 구원? 사랑? 우정? 인간애? 그런것은 지옥에나 가버리라고 해.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있지도 않는 관념에 내가 관심을 보이겠느냐? 뭐, 그런 류라고 보심 된다.
그렇다보니 11편의 이야기는 단 한편도 정상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가차없이 일탈의 횡보를 걷느라 산만하기 이를데 없었다. --물론 그 11편의 주인공들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점에서 무슨 대단히 지적인 구성이나 한것처럼 거품을 물고 있던데, 내 말하건데 그들이 연결되어 있건 아니건 간에 별로 차이는 없다. 이 책이 별로라는 점에서는 말이다.--유명 배우 랄프에겐 자신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지 않자 의아해 한다. 그 후 이상한 일들을 연이어 겪게 되던 그는 아예 자신을 랄프짝퉁으로 남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한다. 랄프와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닮지도 않았다는 말을 듣게 되자 기분이 으쓱해지던 그는 자기집 집사마저 자신을 몰라보자 식은땀이 흐른다. 그에 비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구입한 에블링은 자신의 전화로 랄프를 찾는 전화를 계속받게 된다.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장난치냐면서 오히려 그를 나무란다. 갖가지 수단을 써봐도 랄프를 찾는 전화가 계속 이어지자 그는 이참에 소심한 자신을 버리고 랄프를 연기해보기로 한다. 어차피 자신도 아닌데 뭐 어쩌라 싶었던 것이다. 어이없게도 그의 그런 시도가 먹혀 들어가자 그는 진짜 자신을 버리고 자신이 만들어 낸 랄프로 살아보기로 한다. 어찌되었건 자신의 삶보다는 재밌으니 말이다.
그외에도 소설가와 그의 애인,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팬과 그의 적수 작가, 그 책 안의 주인공들이 나와서 그야말로 책속에 책 속에 책속의 이야기를 펼쳐대고 있었다. 이중도 아닌 삼중?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냈다는 의미인데, 그래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책속이며 어디가 꿈인지 헷갈리게 하겠다는 의도였는가는 모르겠는데, 그저 심하게 정신이 없었을 뿐이다. 딱히 그럴 듯한 이야기도 없었고, 특히나 맨처음 전화가 잘못 걸린다고 계속 휴대전화 회사에 항의하는 에블링의 말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전화로 똑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개연성을 잃고 있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 책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으심 되요 .별로 현실과는 닮지 않았거든요.라는걸 선언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도 <세계를 재다.>라는 데뷔작을 통해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린 작가답게 종종 보이는 재치과 통찰력은 여전히 작가의 이름이 헛되게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해 줬다. 아무리 재능있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작가로써는 일찌감치 성공한 케이스다. 그가 그 성공에 압박감을 느꼈을지 안 느꼈을지, 그것은 내가 알 길이 없지만서도, 전작에 못 미치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고심해서 1년만에 내 놓은 책이 이것이라면 무언가 잘못되었음에도 누군가 그걸 지적해줄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여 보이고 말이다. 하여간 이 책은 작가의 실패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모든 작가들이 성공작만은 내놓은 수는 없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살만 루시디도 드물게 이상한 책을 내놓고, 노벨 문학상을 탄 쿳시조차 가끔 제 정신인가 싶은 책들을 내놓으니 말이다. 그래, 아직 다니엘은 젊다. 아직은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해도 괜찮을 거라 본다. 그의 다음 작품에선 화이팅을 바라본다. 제발 ,그가 자신의 벽을 깨부셔 주기를. 나태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건데 제발 정신은 놓지 않고 현실을 바라 보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