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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폴 콜린스의 신작이라고 해서 반색해서 보게 된 책이다.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지명도가 낮은 그의 책이 그래도 계속 발간이 되어 준다는 사실에 감동하면서...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그의 글발이 여전하다는 사실에 우선 만족을 했다.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을 이끈 사상을 주도했던 인물, <상식>이란 팜플렛의 저자인 토머스 페인이 마지막 숨을 거둔 거리를 찾아 헤메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니 말이다. 적절하고 매력적인 도입부다. 그래, 폴이 원래 글을 이렇게 잘 썼었지.라면서 그의 팬인 독자답게 자랑스러움이 밀물듯이 몰려 들었다. 그리고는 이 책이 걸작은 아니래도 어느정도 수작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러니까 책은 다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책을 다 읽은 다음엔 난 폴 콜린스가 본격적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왠만하면 전적으로 신뢰를 보내던 폴에게 난 어떤 헛점을 발견하게 된 것일까?
토마스 페인 유골 실종사건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이 책은 토마스 페인이 죽은 뒤 그의 유골이 어떤 경로를 거쳐 여기저기 떠돌게 되었는지 추척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한다는 이유로 오해받고 버림받아 쓸쓸하게 죽어간 토마스 페인,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그가 생을 마감하고도 끝나지 않았다. 뒤늦게 그의 이상을 알아보고 추종하게 된 영국인이 그를 무덤에서 꺼내 영국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 영국인의 만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페인의 유골이 논란 거리가 될 거라는 영국인의 생각과는 달리 그가 벌이려던 이벤트가 흐지부지 무산되고 말자 그는 페인의 유골을 함부로 방치하고 만다. 아무리 죽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엄연히 한 인간의 유골임에도 그는 자신의 이용가치에 별 도움이 닿지 못함이 판명되자 골방에 두고 잊어버린 것이다. 평생 험난하고 소란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무덤속에서나마 조용한 삶을 보내게 했음 좋았으련만,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은 그를 가만히두지 않는다. 그렇게 영국을 떠돌던 그의 유골은 이 사람 저사람을 거쳐 결국 공중분해되기에 이르른다. 과연 페인의 유골을 다시 짜맞춰가는 그의 여정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작가의 과거를 쫓아가는 여정은 추리 소설 못지 않게 어려워만 가는데...
그러니까, 시대를 앞서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존중받고 인정받아 마땅한 사람이었지만 시대를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통에 인간다운 삶을 역설했던 그는 쓸쓸하게 비참한 말로를 맞아야 했으며, 놀랍게도 그의 죽음 뒤에도 그런 여정들은 계속되었다. 폴 콜린스는 그가 살았던 시대나, 그리고 그의 유골이 지나친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와 연관된 사람들이 그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앞서나간 이상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그들이 페인의 유골을 접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대의 이방인이자 주변인으로, 하지만 누구보다 세상이 상식적으로 돌아가길 원했던 인간으로써 자신이 바라던 세상이 도래함을 목격하지 못했던 역사의 선각자들을 폴 콜린스는 조명하고 있었다.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역사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역사는 그들을 무모한 미치광이로 치부했지만 그런 이들의 꿈이 없었던 들 우리가 이런 삶을 영위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일단은 맞는 말이다. 역사 중심부에 한번도 서지 못했기에, 그저 역사속 일화에서나 나오는 인물들 역시 중요할 수 있다. 그들이 희생으로 우리 역사가 이렇게 진보한 면도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시선이 틀렸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문제는 , 그가 이런 사람들만 쫓는다는데 있다.< 네모난 못>에서 자페인에 대해 열렬하게 옹호하더니--그건 전적으로 옳은 시도였고 , 또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그 다음 작품에서도 역사속에서 잊혀진 인물들을 조명하더니, 역시나 이 책에서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인물들을 조명해 내고 있었다. 한 작품 정도에서 그러는 것은 식상하지 않은 시도라는 점에서 박수를 받을만 하지만, 모든 작품들에서 이렇다는 것은 그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 저으기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탁월한 글발을 가진 그가 주변부만 치고 다닌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역사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는 것은 좋다.그런데 왜 그들이 잊혀졌을까? 단지 우리들이 배은망덕해서? 전적으로 그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들이 주목해서 봐야하는 교훈이나 드라마가 그들에겐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재미도 흥미도 별로 없다는 뜻이다. 꼬리잘린 여우는 그저 꼬리잘린 여우일 뿐이다. 그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모든 여우의 꼬리를 자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폴 콜린스가 꼬리 잘린 여우들만 주목한다는 점은 심히 걱정이 됐다. 말하자면 아무리 파고, 아무리 치장을 해도 별로 흥미로울게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나...아무리 페인이 시대를 앞서나간 이상주의자이고, 세상이 그를 몰라주었다고는 하나, 그의 유골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놀라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재밌을 것도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흥미가 있었을지 모르나, 조금 지나다 보니, 도무지 이 양반은 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유골이나 찾으러 도서관과 영국 시골을 떠돌고 있다는 것이냐,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그가 재밌다고 설득을 해도, 재료의 한계라는 것이 있지 않는가. 양념을 아무리 많이 쳐도 맛이 없는 음식이 있고 말이다.
하여간 폴 콜린스의 글발이 여전함은 확인하긴 했지만 그의 관심이 한정되어 간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기 그지 없는 책이기도 했다. 아니, 실망스럽다기 보단 걱정이 된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제발 부탁이니. 그가 주변이 아닌 중심부에 관심을 좀 가져주길 기대해 본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것들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어느정도는 말이다. 그가 그의 탁월한 글발을 별로 쓸모없는 것들에 낭비하는 것을 더 이상 목격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나보다는 머리가 좋은 양반이니, 아마도 자신의 문제를 이미 짐작하고 있을 거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