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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장 폴 샤르트르의 어린 시절을 그린 자서전이다. 그가 쉰이 넘어서 쓴 작품이라는데, 어찌나 기억력이 생생하던지 마치 어제 일들을 쓴 것처럼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점이 특징이다. 머리가 좋다고 하더니 정말로 그래보이더라. 아마도 그런 그의 천재성은 어린 시절부터 돋보였던 모양으로, 그의 외할아버지는 손자가 머리가 나쁘다는, 내진 월반을 할 정도로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교장과 싸웠을 정도로 손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럴만도 했지 싶다. 이런 글을 쓸 정도의 천재성라면 어린 시절 가족들의 눈에 뜨이지 않을리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장 폴 샤르트르에 대한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생후 2살때 재빨리도 그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아버지 사망 이후, 그는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기에 자신은 '초자아'가 아예 없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다는 뜻이다. 그가 보봐르와 한 계약 결혼이나 그 외 다른 사람들 눈에는 특이하게 비췄던 모든 기행들의 출발점이 바로 아버지의 부재라는 고백은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또 그걸 또 나쁘게 받아 들이는게 아니라, 좋은 뜻으로 해석해 내는 샤르트르의 낙천성도 천재답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그는 외갓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외할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은 그에게 책과 문자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시켜 준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엄마에 대한 묘사도 간간히 들어있는데, 어린 시절 그는 엄마를 하녀나, 그 비슷한 미성년의 존재로 인식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라고 볼 수 없다는 점도 그렇지만, 결혼 한 후에 부모 집에서 하녀처럼 살아갔다는 그의 엄마가 가엾게 느껴졌다. 하여간 아버지고 엄마고, 할아버지고 간에 자신이 말하고 싶은대로 까발리는데는 못 당하지 싶다. 자신의 가장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가족에게조차 이렇게 냉담하고 잔인한 분석을 틀을 들이대는걸 보니, 어떻게 그가 이름을 남기는 철학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성역이나, 금기, 넘지 말아야 할 선, 복종이나, 권력에의 의지등, 보통 사람들이 흔히 가지게 되는 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그에게 아예 없거나 무시되니 말이다. 확실히 보통 사람들과는 여러면에서 다른 사람이었지 싶다.
그외에, 자신은 나르시스가 아니라고, 나르시스를 넘어섰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중증의 나르시스가 맞지 싶었다. 어찌나 자신에 대해 말이 많던지,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본인에 대한 집착 때문에 빛을 잃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이렇게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 못해 넘치는 어른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늘어놓았음에도 더 할 말이 없는지 찾아 헤메는 듯한 남자는 더더군다나... 한마디로 자신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은 관찰하거나 분석하거나 기록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에게 본인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과연 무엇을 가지고 평생을 버텼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샤르트르와 보봐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의문이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더 의문이 들었다. 도무지 보봐르는 왜 이런 남자에게 매여 평생을 보낸 것일까? 머리가 좋아서? 색다른 매력이 있어서? 서로의 공감대가 같아서 ? 내진 똑같은 사람들이었기에? 가장 그럴듯한 대답은 보바르 역시 조금은 비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여서가 아닐까 싶기는 한데... 가장 최악의 가정이라면 그녀 역시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이라, 자신이 학대를 받고 산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 것은 아닐까 싶지만서도. 이렇게 오로지 자기 중심적인 남자와 사는 것이 유쾌했을리는 없으니 말이다. 물론 선량한 사람이고, 섬세한 감수성에, 세상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은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던것 같다해도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나마 보봐르가 미치지 않았던 것은 샤르트르랑 계약 결혼을 했기에 슨한 유대를 유지한 덕분이 아닐까한다. 뭐, 그런 저런 추측도 그들을 잘 알아야 하는데, 난 그들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으니 추측성 발언은 이쯤해서 그만하기로 한다.
하여간, 말이 많다.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끝도 없는 이야기가 늘어진다고 보심 되니 말이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재미가 있건 ,이익이 되건, 지루해하건, 전혀 상관없이 시시콜콜 하나도 빠짐없이 그당시에 느꼈던 모든 것을을 떠들고 있는데, 물론 때론 그런 천재적인 아이들이 읽고 상상하고 연기하고 세상을 알아가고 하는 것들이 귀여울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장 폴 샤르트르다. 책에서 받은 인상으로는 한없이 밉살맞은 조숙한 천재 아이 같던데, 딱 스머프 나라의 왕따 안경잽이가 연상되는 녀석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가 나중에 세계적인 철학자가 된 것은 굉장히 놀라운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밉살맞은 녀석이 세계의 석학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세상은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머리가 좋다고 큰소리 떵떵 치는 녀석들이 이렇게 근본적으로 밉살맞으니 말이다. 우리 같은 둔재들은 그냥 하늘을 바라보면서 신의 불공평함에 대해 불평이나 해야 할 듯...
그럼에도 초반 인물 묘사는 참 좋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꼬마의 책에 대한 여정이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지루해지긴 하지만서도. 그의 지루한 수다를 참아낼만한 인내심이 있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한번 보심도...그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