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 CNN 앵커, 앤더슨 쿠퍼의 전쟁, 재난, 그리고 생존의 기억
앤더슨 쿠퍼 지음, 채인택.중앙일보 국제부 옮김 / 고려원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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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대 재벌가로 손꼽히는 밴더빌트 가문의 자손이자 CNN 간판 앵커로 유명한 앤더슨 쿠퍼가 쓴 회고록이다. 그다지 촘촘하지도 기록을 남기려 쓴 글도 아닌 듯 하니 자서전이라 할 수는 없고,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놓았다 생각하심 되겠다.  내가 본 인상으로는 한 시기의 마감(closer)의 의미로 쓴 것 같았다. 무엇엔가 쫓기는 듯 내전과 기아와 홍수와 파괴의 현장으로 자신을 내 몰았던 어떤 번뇌로부터의 졸업 말이다. 그렇다면 그를 사지로 내 몬 번뇌의 시작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9살 무렵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뒤 바쁜 나날들로 슬픔을 이겨 내고 있던 앤더슨 쿠퍼는 어느날 엄마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형이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난관으로 떨어져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언론에선 "신탁 펀드에서 나온 이자만으로 평생 먹고 사는" 팔자 좋은 아이의 자살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 대고, 엄마는 유령이라도 본 듯 그 애가 '체조 선수' 처럼 내 눈 앞에서 다이빙을 했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그런 상황을 지켜 보던 쿠퍼는 양가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형에 대한 그리움과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자신에게 맡기고 떠나 버렸다는 분노가. 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고...하지만 내면 깊숙이 그를 사로잡은 질문은 아마도 이런 것이었으리라. 난 앞으로 형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과연 이 모든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왜 내게 이런 일이?  그는 알아야만 했다. 이 무작위로 벌어지는 일들의 의미를 ... 생존하기 위해,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는 길을 떠난다. 그때가 그의 나이 21살, 당시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나의 내면에서 느끼는 고통과 일치하는 바깥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 머물고 싶었다. 내게는 마음의 평정이 필요했다. 나는 살아남고 싶었으며 다른 이들로부터 무엇가는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전쟁'은 나의 유일한 선택처럼 보였다.

 

아프리카, 넓은 대지가 그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해 주는 가운데, 그는 내전으로 황량해진 오지를 취재해 간다. 너무 위험하고 처참해서 아무도 가지 않는 곳만을 골라 쫓는 기자가 되어버린 그는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위험하길래라며 확 감이 안 오시는 분을 위해 그가 갔던 곳의 지명을 알려 드리면 다음과 같다. 보스니아, 사라예보, 르완다,소말리아, 이라크, 아이티, 쓰리랑카, 카트리나가 몰려온 뉴올리언즈등등...이름만 들어도 오싹하다. 제 정신인 사람이라면 도망가야 마땅한 곳에 제발로 취재하겠다며 들어가는 그의 진지함에( 나 같으면 정신 나감이라고 하겠지만.) 사람들은 신뢰를 보내오고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가 유명해 진 것은 단지 그가 재난과 비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적인 시선, 균형 잡힌 감각에 공정한 보도, 그리고 두려움 없이 공격을 해대는 성역없는 기자 정신이 돋보였던 때문이다. 일예로 카트리나 현장을 취재하면서 미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를 보자니 미국 사람이 아님에도 속이 다 시원하더라.  과연, 부시 정부를 향해 그렇게 직선적으로 입바른 소리를 할만한 사람이 미국에서도 얼마나 되겠는가. 주눅 들거나 눈치 보지 않고 늘 당당한 앤더슨 쿠퍼, 그건 어쩌면 밴더빌트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자신의 명성을 올바르게 쓰는 사람으로써 그는 너무 매력적이다. 인간적인 매력을 자산으로 친다면 아마 그의 재산은 그가 받은 유산의 가치를 넘어서지 않을까. 우리나라엔 그런 언론인 어디 없나, 한없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한때 오지만을 전공으로 돌아다니던 그는 이제 미국으로 돌아와 정착을 한 듯 하다. 르완다의 학살 현장에서 그는 이제 집에 돌아갈 때가 됐다고 선언한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다 채워진 것이다. 슬픔의 잔이, 비통의 시간이, 의문에 대한 해답과 보고 겪어야 했던 것에 대한 호기심, 인간에 대한 지식도, 그리고 어디선가 형을 만날지 모른다는 그리움까지도. 극한까지 자신을 밀어 붙이던 그가 이제 깨달음의 항아리를 채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형의 죽음에 대한 애통함을 가시게 하진 못한다. 단지 이제 그는 죽음을 넘어섰다는 것일뿐...

 

수 많은 죽음들을 목격하면서 그는 삶과 죽음에 경계선이 단지 희미할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슬픔을 세상을 이해하는데 올곧이 써 버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서야 이 세상에 사는 사람과 세상을 등진 사람을이애하며 온전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죽음이 그렇게 우리 곁에 있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낭떠러지 끝에 매달려도 그 끈을 놓치 않고 잘 매달리는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은 것이 4개월 전인데, 그동안 리뷰를 쓰기가 쉽지가 않았다. 재벌 3세라는 화려한 겉모양에 가려진 그의 본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읽은 <행운에 속지 마라>에 이런 말이 쓰여져 있었다. 독자 서평은 책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 리뷰어 개인의 이야기일뿐이라고. 동의한다. 그런 시각에서 이 리뷰는 어쩜 가장 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다소 비음이 섞인 차분한 목소리, 30세에 벌써 머리가 세기 시작했다는 백발, 진지한 인상에 재벌이라는 타이틀, 세상의 위험한 곳이라면 어디든 (불러주건 안 불러주건) 열심히 따라다닌 못 말리는 오지랖, 선량해 보이는 눈빛,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양육 소송의 주인공인 어머니와 자살한 형등...이것이 앤더슨 쿠퍼에 대한 내 첫 인상이었다. 재벌인데, 전쟁터만 쫓아다닌다고? 사는게 어지간히도 심심했던 모양이군, 특유의 냉소로 난 비아냥 댔다. 그때까진 몰랐다. 그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방콕 족인 나와 지구상의 경계선은 없다면서 방방곳곳 누비고 다니는 역마살족인 앤더슨 쿠퍼에게 공통점이 있을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나. 하지만 그랬다. 세상에나, 책을 읽으면서 어찌나 그가 잘 이해되던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의 내면의 역정과 내 것이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던 것이다. 저건 내 이야기잖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난 그가 왜 자신을 전쟁터로 몰 수 밖엔 없었는지 안다. 내면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을. 세상 끝까지 가보는 것도 슬픔을 이겨내는 한가지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아냐고? 난 그와 비슷한 나이쯤에 오빠를 잃었다. 그에게 철저히 공감할 수 밖엔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전전긍긍하면서 해답을 찾아, 슬픔의 에너지가 나를 밀어 붙이는 곳까지 밀려 갔었었다. 종종 생각해 본다. 20대에 오빠를 잃지 않았더라면 지금  난 아주 평범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그 잃어버린 시간들을 어디가서 보상을 받아야 하나 억울할때도 있다. 오빠를 만나 늘씬하게 패주면 억울함이 좀 풀릴까? 하지만 난 안다. 난 오빠에게 한 마디도 할 수 없을 것임을. 슬픔을 감내해야 하는 것도 사랑의 다른 모습이니, 어쩌겠는가,받아 들여야지.

 

이 책은 한 개인의 회고록으로도,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는 한 언론인의 회고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 어떤 것이 더 눈에 들어오는 가는 당신의 관심에 따라 달라지 테지만, 어떤 걸로 읽어도 무방하다. 단지 팁을 드리자면, 어떤 걸로 읽어도 매력적인 한 인간과 마주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특히나 돈이 사람을 비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한번 보심도 좋을 듯. 편견이 깨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떠신가? 극한의 경험을 한 선배에게 그 경험담을 들어 보는 것은? 장담컨대 흔한 경험담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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