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le of Tom Kitten : The original and authorized edition (Hardcover)
Potter, Beatrix / Frederick Warne & Co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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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어렸을 적 나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팬이었다. 피터 래빗과 다양한 동물들의 모험과 우정과 소란들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기분이 울적해지면 기분 전환 삼아 책들을 뒤적이고 했던 것이. 한번 본 책들이라고 상관없었다. 아니, 대개는 한번 이상 본 책들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책을 쌓아놓고 사줄만한 형편이 되는 집들이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 집도 그랬다. 갖고 있는 책이 몇 권  안 됐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이미 뻔히 결론을 아는 책들을 다시 살펴 보면서 처음 보는 듯 놀라고 즐거워 하고 당황하고 안타까워하고 궁금해 하고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때론 다른 결론을 내는 상상해보면서. 하지만 늘 결론은 한가지였고, 결국 그런 결론으로 끝난다는 것에 저의기 실망했다. 그땐 몰랐다. 박혀 있는 문자가 내 생각만으로 바뀌질리 없다는 것을...

그나저나, 그땐 기억력이 그렇게 안 좋았던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지금은 한번 본 책을 다시 보라면 마치 주리를 트는 고문을 당하는 양 비명을 질러대는데, 어떻게 그땐 보고 보고 또 본 책들을 마치 처음 보는 것인양 볼 수 있었던 것일지 이해가 안 간다.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있는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미 달달 외우고 있는 책들을 처음 보는 것인양 그렇게 반갑게 읽을 수 있던 것일까. 아마도 그런 것들이 어린 아이의 특성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보면 내 조카도 그런 것 같으니 말이다. 물론 그 녀석은 나보다 진일보해서 자신이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읽어줬던 책을 읽어 주면서 내가 조금 밍기적 거리면, 냉큼 자신이 줄거리를 설명해 주는걸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녀석은 아직 아기다. 그래서, 한번 읽은 책을 또 읽어 달라고 , 다음에 와서도 또 읽어 달라고 요청한다. 넌 이걸 좋아하는구나? 난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읽어준다. 아이들의 취향이란, 그렇게 분명해서 좋다.별로 복잡하지도 않고 말이다. 

 하여간 요즘은 내 책보다 조카의 책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건 거짓말이고. 물론 내 책에 훨씬 더 비중이 높지만 적어도 신경은 쓰고 있다. 것도 엄청 많이. 조카가 생기기 전엔 내 책만 고르면 됐지만, 그래도 명색이 고몬데, 나만 생각하긴 그렇지 않는가. 어쨌거나  조카에게도 신경을 쓴다는데, 그 정도는 봐주시라. 엄살을 부리자면 엄청 쓴다.  

그런데 어렵다. 아이들 책을 고르는 것은. 동화책이 많긴 했지만 딱히 내 눈에 차는 책을 찾는건 내 책을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럴때마다 내가 어릴적 읽었던 책들이 생각난다. 그 많은 좋은 동화책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지금 나오는 책보다 못하지 않은 책들이 많았는데, 어렴풋이 생각나서 찾아보면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나마 베아트릭스 포터의 경우는 몇 년 전 전기 영화가 나온 관계로 이름이나 기억나지, 다른 작가들의 동화책들은 제목이나 작가이름 조차 가물가물이다. 그렇다보니 내가 어렸을 적 읽었던 좋은 동화책들을 찾을 길이 없다. 안타깝고 서운하다. 지금 조카에게 읽어주면 환상적일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간신히 고른 베아트릭스 포터의 책, 그나마 원서로 읽어야 한다.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포터의 책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절판이란다. 그래도 명색이 동화계의 대모라고 불리우는 작가인데, 피터 래빗이라는 유명한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우리나라 출판계가 좀 너무한거 아냐? 싶다. 아니 어쩜 그보단 우리나라 엄마들이 문제일지도... 책이 팔려야 출판사도 출간을 할테니 말이다. 하여간 피터 래빗의 인기가 그렇게 떨어졌단 말인가, 좀 서운해 하며 하는 수 없이! 원서로 들여다 본 책이 되겠다. 피터 래빗은 아니고, 톰 키튼이라는 고양이 삼 남매의 이야기다. 

세마리의 귀여운 고양이 삼 남매가 있었다. 미튼스와 톰 키튼, 그리고 모펫양. 그들의 엄마인 타비샤 트윗칫 여사는 오후 티 파티를 위해 그들의 단장을 시작한다. 얼굴도 닦아주고, 털도 브러쉬 해주고, 수염과 꼬리의 빗질도 마쳤다. 몸 단장을 마쳤으니 그 다음 순서는? 엄마는 그들에게 멋진 옷들을 입혀준다. 문제는 그 멋진 옷들이 아기 고양이들에겐 무척 불편했었다는 것, 엄마는 손님들이 오시기 전까지 얌전하게 있을 것과 옷을 깨끗하게 해 줄 것을 당부하지만, 과연 집밖으로 마실 나온 그들에게 옷이 얌전히 붙어 있기나 할까? 결국 티파티가 시작할 무렵, 엄마는 그들을 방으로 몰아넣고 손님들에게는 홍역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야 마는데... 

도무지 포터 여사는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는 분이면서 아이들의 행동을 어쩜 이리도 잘 아시는 걸까? 고양이로 분한 세 남매의 천진한 행동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왜냐고? 우리 조카의 행동하고 똑같기 때문이다. 멋진 옷을 입혀 주면 뭐하나? 그게 그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 물론 새 옷이 기분이야 좋긴 하겠지만, 아이들에게 옷이 새 것이니 얌전히 있으라는 명령은 하나 마나다. 아이들에겐 옷보다 놀이가 먼저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닿는대로 이리저리 달려 가다보면 옷이 더렵히지고 구겨지는 것은 당연지사. 개울이나 수돗가에라도 지나가는 날엔 젖는 것은 순식간이다. 막을 순 없느냐고? 농담하나? 놀겠다는 아이를 어떻게 막나? 그런 방법은 이 세상엔 없다. 또 그래야 하는 가도 모르겠고.  아이들에겐 노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공부 아니겠는가. 

오래된 책임에도 내용은 지금 읽어도 하나도 손색이 없다. 아마도 포터가 포착한 이야기 자체가 아이들을 관찰한 것을 토대로 쓴 것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시대가 아무리 지났다고 한들, 아이들이 어디 달라지겠는가. 여전히 그 아이들이지. 하여 내용이 촌스럽지 않을까 하던 우려는 괜한 것임이 드러났는데...문제는 그림이다. 움직임이 약간은 어색하다. 색상도 그다지 선명하지 않고. 옷 입은 고양이 세 남매는 그야말로 촌스럽다. 요즘 동화책을 만드시는 작가분들의 경우 매우 자연스럽게 그린다는걸 감안하면 포터가 살았을 당시는 디테일에 신경을 덜 쓴 모양이지 싶다. 아마도 그땐 이런 책이 나와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겠지만서도 말이다. 포터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만한 그림이 지금 보니 촌스럽다니...대략 실망이다. 포터가 그린 고양이 들이야말로 현실속에 보는 고양이 그대로일텐데, 더 앙징맞고 귀엽고 깜찍한 동물들 그림에 익숙한 눈에는 그녀의 동물들이 촌스럽게 느껴진다. 동물들을 의인화한 어색하지 않은 상상력에,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거기에 동물들의 특징들을 잘 포착해 그려낸 포터만의 장점들이 여전했음에도, 이젠 그녀의 동화책이 한물 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영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에겐 읽어줄만한 동화책이 아닐까 한다. 길지 않은 세련된 문장들이 읽어주기 딱 좋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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