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 위에서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평점 :
자유로운 영혼이라기 보다는 색다른 것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 샐 파라다이스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신 사나운 청년 딘 모리아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국 횡단기다. 저자 잭 케루악의 소설속 자아인 샐 파라다이스는 할 일도 없던 차에 모험과 인생을 찾아 미국을 횡단해 보기로 한다. 책임도 의무도 미래도 희망도 돈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길, 히치하이커와 친구들의 도움만으로 광활한 미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은 덴버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다시 동부로, 멕시코시티로 이어진다. 마치 여행 자체를 중계 하는 듯 쉴새 없이 터져 나오는 입담, 대화 자체를 복사하는 놀라운 기억력, 그의 흥미를 끌어 내기에 충분한 개성을 가진 괴짜 친구들, 마음 내키는대로 떠나고 머무는 자유로움과 때때로 보여지는 통찰력등이 이 책의 위상을 높이고 있었다. 특히 초반 도입부, 핸드 헬드 기법으로 찍은 영화를 보는듯한 박진감이 넘치는 문체나, 그의 여정 자체에서 풍겨대는 독창성,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등장인물인 딘 모리아티의 기행등이 왜 그의 작품이 아직까지 회자 되고 있는지 짐작하게 했다. 남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그 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던데, 아마 그것이 이 작품을 타임지나 뉴스위크지 선정 100대 명저에 뽑히게 한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선명한 목소리를 내는 작가가( =Originality)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 책은 몇 년전 원서로 읽고 이번이 두번째다. 그렇다보니 두 권에 명저를 넘어 신화적인 책으로 꼽히는 책임에도 그에 관한 리뷰가 저렇게 짧아져 버렸다. 한번 쓴 것을 다시 쓰려니 귀찮아진 것이다. 그렇게 귀찮아 할 것을 다시 읽은 건 처음 읽었을때 별로길래 혹시나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1권을 읽을때만 해도 내가 잘못 읽은게 분명하지 싶었다. 정신 번쩍 나도록 독창적인 문제, 아니 왜 이런 글을 내가 놓친 거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2부로 넘어가면서 곧바로 전해지는 익숙한 데자뷰... 총체적으로 정신이 나간 사람들의 기행을 쉬지도 않고 읽다보니 지루해서 미칠 것 같다. 마지막에 가선 그야말로 의무감에 간신히 읽었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지난 번에도 그랬었다는 것을. 당시 퉁명스럽게 리뷰를 쓸 수밖엔 없었던 것은 책을 집어 던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인내심이 바닥나 버렸기 때문이었음이 쉽게 추측됐다. 책을 내려 놓으면서 든 ' 아이고. 이 정신 나간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은 도무지 어떤 인간들이냐,' 싶던 것도 똑같았다. 도무지 사회가 얼마나 곪아 있고, 갑갑했길래 이런 미친 사람들의 일탈에 속시원함을 느끼며 우상시 하게 된건지, 갑자기 미국 5~60년대 사람들이 가여워졌다.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중심적인 인물이 안하무인 동성애자인 게르망트 대공작(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혹 아시는 분은 지적해 주시길.) 이라면 이 책의 주인공은 딘 모리아티다. 사실 그 둘이 아니라면 두 작품이 걸작으로 탄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소설이라는 것이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끌어 내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들같이 독특해야 새롭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때는 놀랍도록 신기한 존재였던 그들도 시간이 흘러 분석을 거듭하다보면 신선함을 잃어버린 다는 점이다. 익숙해 져서냐고? 어느 정도는...하지만 그보다는 개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걸 알게 되서 일수도 있다. 마법 상자에 들어간 토끼가 실은 사라진게 아니라 숨어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심드렁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면에서 딘이라는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놀라움이 실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면 이 책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 질 것이다. 작가가 설명하는 딘은 이렇다. 자의식없이 되는대로 떠들고, 꼴리는 대로 섹스하고, 내키는대로 버리고 달아나고, 생각나면 다시 찾아오는 ,한마디로 책임감이나 의무, 내진 금기와는 상관없이 사는 인물이다. 매혹적인가? 어쩜 그럴 수도...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니 말이다. 작가 역시 그렇게 생각없이 사는 강렬하기만 한 딘이 신기해 죽을 지경이다. 어쩜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도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처럼 보인다. 자신과 관계한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악의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를 미워할 수없게 만드는 묘한 구석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딘은 왜 그렇게 행동한 것일까? 잭이 경원에 차서 바라보는 것처럼 그는 개성 넘치는 천재나 도인인 것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정신병자에 불과한 것일까? 정신병원에서 막 탈출했거나 아니면 다시 들어가야 마땅한?
몇년전에 읽었을 때와 달리 이번엔 딘이라는 인물이 비교적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그는 매우 심하게 상태 나빠진 노홍철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너지 넘치고, 흥미있는 것에는 열정을 다하지만 오래가진 못하고, 늘 떠들고, 자극을 추구하고, 자극 상대가 자주 바뀌며, 남의 말에 잘 귀 기울이지 않고, 조울증 환자처럼 기분이 들떴다 순식간에 의기소침해 지는 등...심리학적으로 이런 것들은 집중력 장애를 가지고 있던 아이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성장했을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현란한 응원단장처럼 늘 붕 떠 있는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일까? 만약 내가 서커스같은 소란스러움과 기괴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딘은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한 상대일 것이다. 어쩜 잭 케루엑에겐 딘이란 사내가 그렇지 않았을까 한다. 절벽으로 내달리는 아찔한 기분으로 살면서도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가는 딘이 잭에겐 특별난 존재로 비춰졌을 것이다. 적어도 난 저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잖아? 라는 우월감도 느끼면서 말이다. 인생의 치어리더이자, 희생양, 사이비 구세주,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는 상황에서도 비참함없이 웃을 수 있는, 아니 한술 더떠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어 내야 살 맛이 나는 사람... 그렇다보니, 잭에겐 그가 친구이기 이전에 일말의 안도감을 주는 존재이지 않았을까? 잭이 딘을 향해 불평을 하고 버림을 받으면서도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았는지 이해 되는 대목이다.
하여간 초반은 괜찮지만 2부를 읽으려면 각오를 좀 하셔야 할 것이다. 똑같은 미친 짓거리를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 해대는 사내들의 일지를 들여다 봐야 하니 말이다. 지루하고 지겹다. 내용이 그러할진대, 문장이 출중하면 뭐하나? 한가지로 지루할 뿐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읽으면서 "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한 사회의 관습과 제도, 온갖 형태의 업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찾고 진정한 해방을 얻고자 하는 분투를" ( 표지에 쓰인 문구를 옮긴 것임.) 읽어낸다면, 분명 나보다는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이 책은 어느정도는 시대의 코미디로 보였다. 정신병자가 우상이 되다 못해 신화가 되었다니 말이다. 그나마 점수를 준다면 독창적이고 독특한 코미디정도? 한 100년 후엔 이 책이 어떻게 해석되어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