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나무같은 사람 -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
이세 히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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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사진만으로 마음을 사로잡기는 쉽다. 요즘엔 왠만한 표지들이 다들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나오니 말이다. 문제는 그 표지에 걸맞는 내용인가 하는 것... 처음 이 책을 보고서 망서린 것도 바로 그때문이었다. 과연 이렇게 아름다운 표지에 걸맞게 괜찮은 내용일런지 하는 것이 적잖이 미심쩍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느는 것이 의심과 회의와 냉소뿐이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어쩌겠는가. 그동안 너무 많이 당했던 (?) 탓에 쉽사리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하여, 오랜동안의 망서림 끝에 결국 사기로 한 것은 내용이 별로일지라도, 그림만 봐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조카는 어차피 글을 아직 읽지 못한다. 엄청나게 읽고는 싶어하나, 아직은 기억만으로 읽는 척 할뿐이다. 다행히도 난 기억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게시리 문자 해독능력이 있다. 하지만 딱히 내용이 별로라면 글자는 무시하고 그림만 보면 된다. 이렇게 깔끔하게 해결책을 낸 나는 그런 내 자신을 무척 뿌듯해 하면서 주문을 했다. 다음날 책이 왔고, 놀랍게도... 책이 너무 맘에 들었다. 

 내가 자랄때와는 다르게 요즘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들이 널려 있다. 하지만 그 책들중에서 내가 정말로 내 맘에 들어 환호하면 조카에게 들려줄만한 것들은 생각보다 적다. 아니, 왜 요즘 같은 시대에 괜찮은 동화책이 없는 거야? 불평, 불만이 폭주한다.궁시렁대가 이런 책을 만나면 저절로 신바람이 난다. 그래, 이런 책들이라면 두고두고 읽어줄만하지. 싶은 것이다. 

내용은 방학을 맞아 일본에서 프랑스로 놀러온 한 아이와 식물학자와의 우정을 그린 것이다. 식물원 곳곳에 출몰하는 일본 여자아이의 모습이 눈에 익을 무렵, 식물원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아이를 잡아 온다. 해바라기인줄 알고 꽃을 꺾었던 것이다. 그 꽃이 이미 꺽어져 있었던 것이라며 변명하는 아이, 물론 그 꽃은 아이가 꺾은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드리기 위해 꽃을 꺾었다는 소리를 들은 식물학자는 그녀에게 해바라기 씨를 건네준다. 집으로 돌아가 정성스레 씨앗을 심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아이, 싹이 트자 방방 뜨면 좋아한다. 여전히 식물원으로 출근을 하는 아이를 위해 식물학자는 천천히 식물원에 있는 나무들과 꽃과 정원들을 설명해준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둘을 묶어 주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 아이가 일본으로 가야 하는 가을이 되어 버리는데... 

 그림들이 너무 훌륭해서 할말을 잃을 정도다. 표지의 사진도 그렇지만 두 페이지에 걸쳐 나무를 표현한 그림은 정말로 와아~~소리가 나올정도로 멋졌다. 실물을 봤다 해도 감탄사가 나오긴 했겠으나, 그것을 못지 않게 표현해낸 작가의 그림 솜씨가 탁월해 보였다. 단지 실물을 그래도 묘사하는 것이 아닌, 저자 고유의 시각으로 그려낸 식물원의 모습들이 인상적이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서정적이고, 욕심 없으며, 자유롭고, 한가로운 식물원을 정경을 어떻게 잡아냈을지... 작가 덕분에 몰랐던 식물원의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한 듯 해서 읽는 내가 뿌듯해 버렸다. 이 책을 읽고 식물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서 조카를 읽어주면서 내가 먼저 감동해 버렸다. 5살인 조카는 아직까진 왜 이  그림들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그 녀석에겐 이것에 처음 만나는 세상이고, 하니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이렇게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고 있을테니 말이다. 언제나 어른이 되면, 그래서 자신의 아이를 위해 책을 고르다보면 어릴적 이 책이 기억나겠지. 어쩜 왜 요즘은 그런 책이 나오지 않느냐면서 불평을 할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적에 읽어줬던 동화책들은 다들 멋지고 감동적이며, 아름다웠는데 하면서...추억에 젖는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추억으로 남겨도 좋을만큼 멋진 책이니 말이다. 

책을 다 읽어주고는 조카에게 월요일에 어린이집에 이 책을 들고 가서 친구들과 함께 보라고 해줬다. 조카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어린이집에 가지고 가서 친구들과 함께 읽곤 한다. 물론 선생님이 읽어 주시긴 하지만, 좋은 책을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뿌듯해 한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때면 이러다가 조카가 토니어 크뢰거처럼 되는건 아닐까 걱정이 되긴 한다. 그것이 굉장히 외로운 길이라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나눈다는 생각이 얼마나 좋은 건데 , 아마도 내가 비약이 심하지 싶다. 조카가 내 말대로 이 책을 어린이집에 갖고 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랬거나 안그랬거나 간에, 이런 책들은 많은 아이들이 읽어줬음 싶다.  비록 번역체가 읽어주기엔 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아름다운 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벽한 책을 만나는 것이 늘상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기에, 모든 아이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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