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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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책없는 사랑이 요즘에도 먹히긴 하는걸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이다. 내가 너무 냉소적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도무지 이렇게 현실성 없는 사랑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낭만적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겠지만, 낭만적인 사랑은 이렇게 무참할 정도로 진지하지 않지 않던가? 정신 나간 사람들의 사랑? 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너무 메마른 여자인 걸까?  

내용은 이렇다. 대기업 사장의 부인인 28살이 마리안네는 남편이 주최하는 문학상 수상자인 묀켄을 만난다. 만나자 마자 그녀를 향해 "당신이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마리안네는 운명을 느낀다. 처음 만난 그를 집으로 데려온 마리안네는 아들과 시아버지, 그리고 남편을 두고 묀켄과 집을 나선다. 여기 저기 떠돌면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던 둘은 점차 불안에 떨게 된다. 마리안네의 불안이 극에 달할 즈음, 며느리를 예뻐하던 시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온다. 시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마리안네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번엔 시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갑작스럽게 집을 나선 것 만큼이나 충동적으로 다시 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마리안네는 최대한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려 하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자의식이 강한 그녀가 허공에 떠돌고 있을 즈음 묀켄이 써 오던 극본이 완성되어 연극으로 상영된다는 것이 전해진다. 표를 사놓고 전전긍긍하는 그녀 앞에 다시금 당연하다는 듯이 묀켄이 나타나는데... 

내가 어렸을 적에 이런 책을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둘의 사랑이 절대적이고 아름다우며,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려나? 물론 지금도 그것은 똑같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을 어찌 인력으로 막아야 한다고 하겠는가.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데 막아야 한다고 생각할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다만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한없이 바보로 비춰지던 마리안네의 남편이었다. 엄마는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후 자살로 막을 내려, 그 이후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돈에서는 성공을 했으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신부를 맞아 아내가 가출하는 꼴을 봐야 해. 바람이 나서 가출한 아내를 어찌해야 할까 고민한 사이도 없이 아버지가 아내를 데리고 와, 그런 아내와의 사이가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그 연적이 찾아와 아내를 데려가...이건 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질 않는가? 다른 사람 둘이 사랑한다고 해서 왜 마리안네의 남편이 상처를 입어야 하는게 당연시 되어야 하는지 언잖았다. 사랑받지 못하는 자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버림받아도 된다는 말인가? 

난 마리안네가 싫더라. 사랑하지 않는다는걸 잘 알면서도 안전하단 이유로 결혼을 선택한 그녀, 그것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주체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좋았을 것이다. 겨우 한번 만난 남자를 따라 나선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건 또 뭔가?  이렇게 대책없어도 되는 것일까? 의아했다. 어쩌면 그 둘이 그런 최후를 맞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런 결론이 아니라면 도무지 수습이 되지 않는 전개였기 때문이다. 과연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 둘은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몇 달이 지난 후에 마리안네는 다시금 불안을 느낀다면 그를 떠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어디 있는가?  왠지 둘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죽음 밖에는 없을 거란 생각에 우울해진다. 역시 대책없는 사랑은 대책없는 결론밖엔 나올 수 없는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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