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토피아 ㅣ 서해클래식 4
토머스 모어 지음, 나종일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6월
평점 :
오랫동안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벼르다가 이제서야 겨우 읽게 됐다. 어려울 거란 선입견 때문에 그간 미뤄왔었는데. 읽어보니 전혀 어렵지는 않았다.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할만한 수준이여서, 도무지 이게 원작을 그대로 옮긴 것인지 약간 의심스러웠다. 어쨌거나 토마스 모어라는 걸출한 인물이 남긴 위대한 작품, 유토피아, 읽은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의 책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한 유명한 책을 실제로 읽어보니 감회는 새롭더라. 어릴적부터 너무나 영특해서 스승마저도 이 아이가 언젠가 큰 인물이 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토마스 모어, 그렇다면 오래된 그의 유토피아는 현대에서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명성만큼 대단한 책은 아니었다는 인상이다. 고전은 고전이로되, 이미 값어치를 잃어버린 고전이라고나 할까. 토마스 모어가 뛰어난 분이시긴 했으나, 시대가 워낙 그러다하보니 천재적인 통찰력을 발휘하기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토마스 모어하면 영화 <사계의 사나이>가 떠오른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중 하나인 그 영화에선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조화시키려 노력하던 판사 토마스 모어가 시대의 협잡꾼들에게 어떻게 숨통이 조여 가는지 잘 보여주고 있던 영화다. 어떻게 보면 노무현 대통령을 닮은 듯도 보이는 인생 역정---뇌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몰락한 것이--을 보면, 세상을 올바른 정신으로 산다는게 쉽지 많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나치게 올바르고 똑똑했던 그가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않은 이상향을 그린 것은 어쩜 놀랍지도 않다. 그는 그러한 이상 사회를 얼마나 염원했을까?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속썩으며 살면서 말이다. 오늘날에도 사회를 바로 세우는 노력들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똑똑함이 안타까운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그렇게 탁월한 그를 오늘날에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감회에 젖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책으로써, 유토피아를 말한다면, 그다지 볼 것은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시대에 비하면 대단히 앞서나간 사상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오늘날 사회에 빗대어 보면 심각하게 단순화된 사회다. 정말로 이상적이라 현실적이지도 않고, 현실에 적응이 된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해질 것 같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 사회가 실현이 된다고 하면 조지 오웰이 말한 <1984년>에 못지 않게 갑갑한 사회가 될 것만 같았다. 사회를 꾸려 나가는게 법이나 정치, 조세 문제들의 조직들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공감을 하나, 그는 인간들을 좀 모르는 사람이지 않았던가 싶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놀랄만한 일도 아니지만서도 말이다. 그가 살던 시대가 정치나 법, 철학들이 태동하던 시기라 하면, 요즘은 그야말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 않는가. 아무래도 그의 유토피아가 어린아이의 장난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그때문이다. 상상력에 의존한 사회는 인간의 정확한 데이타에 의해 개발된 사회보다 현실적이지 못하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토마스 모어가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다양한 지식들이 그를 얼마나 기쁘게 하고 바쁘게 했으며 한층 더 휴머니즘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켰겠지 싶은 것이다. 통섭이라는 말을 굳이 내놓지 않아도 그는 눈이 빠질 정도로 읽는데 몰두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 못지 않은 휴머니즘 가득한 천재가 다시금 이 세상에 태어나주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