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의 따뜻한 아침식사
리처드 르뮤 지음, 김화경 옮김 / 살림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받아 들고는 볼까 말까로 망서렸다. 요약한 내용을 읽어 보니 잘 나가던 사장님이었다가 파산을 한 후 거리로 내 몰린 모양이던데, 그저 그렇고 그런 신파조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음에도 읽기 시작한 것은  왜였는지 모르겠다. 미련해서, 아니면 그럼에도 뭔가가  있을 거란 예감이 들어서? 물론 책을 읽기 전에 좋은 책인지 아닌지 판별이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서도, 실은 그런 예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딱 느낌이 좋아 읽어보니 실제로 좋은 책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 책처럼 별로인게 보장 되는 듯한 포스를 풍겨대도 읽어보면 좋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즉 , 내가 말하려는 것은, 표지란 때론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으니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가는 읽어 보기전까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나 이 책처럼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쓴 책이라면 판단에 신중해야 한다. 생각할 거릴 던져주는 생생하고 강력한 이야기들에 눈을 돌리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육십을 넘긴 리처드 르뮤는 한때 정말로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골프를 치러 다니고, 애인과 함계 세계 여행도 다녔으며 기자에 사장도 해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순간의 파산으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만다. 돈만 잃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지만 모두 떠나가 버린다. 친구도, 애인도, 그리고 가족들마저도... 남은 것은 오로지 그가 키우던 개 윌로우뿐,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충격과 자식들마저 등을 돌린 현실은 그를 우울증으로 내몬다. 자식과 손자들 이름마저도 잊어버릴 정도였다니 그의 절망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고급 호텔에서 삶을 만끽하던 그가 차 가스비와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고말자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의 자살은 그러나 애완견 윌로우의 존재로 인해 미수에 그치고 만다. 

 

자살소동 이후 그는 이제 윌로우를 위해 다시 살아보기로 한다. 너무 배가 고파 난생 처음 구걸에 나선 그는 무안만 당하고는 쫓겨 나고 만다. 마침 누군가 샐리네로 가면 아침을 줄거라는 말에 주춤대며 가본 그는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누가 봐도 신참 노숙자인 그를 보곤 C라는 사람이 다가와 토닥거린다. 이곳에 있는 사람도 너와 같은 사람이니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듯한 C 덕분에 리처드는 마음을 놓는다. 식사가 끝난 뒤 C는 리처드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노숙자가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을 알려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리처드는 평소라면 전혀 눈여겨 보지 않았을 노숙자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머리를 다친 뒤 버림받은 아줌마, 평생 알콜 중독자로 비틀대며 살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다는 앤디, 집을 가출한 뒤 숲에서 생활을 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아줌마들, 명품들을 휘감은 채 샐리네로 오게 된 한 여성, 베트남 출전 병사였던 랜디...한때 자신과는 다른 세계 사람일거라 생각했던 노숙자들이 그저 운이 나쁜 사람들일뿐이라는걸 그는 알아가게 된다. 그는 점차적으로 그들에게 연민과 함께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그가 노숙자들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하게 된 것은 C의 도움이 컸다. 단지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평정을 가져 오게 한다는 그는 세상사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모른 척 한다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는 다른 노숙자들을 섬세하게  챙기는 그의 모습에서 리처드는 감화를 받게 된다. 더불어 그간 자신이 좁은 우물속에 살고 있던 개구리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C가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지 알게 된 리처드는 1년 반동안의 노숙 생활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론 도저히 못 쓸거라는 절망에 던져 버리기도 했으나, 같은 노숙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원고를 완성하게 됐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우선 이 책을 보면서 서구 사회의 냉정함에 놀라고 말았다. 파산을 했다지만 그래도 키워준 아버지인데, 가족들이 멀쩡히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노숙자로 내몰았다는 것이 충격이었던 것이다. 저자 자신도 그 충격에 가족들 이름마저 잊어 버렸다니 비단 나만 충격을 받은건 아닌 모양이다. 그러게 동물이건 인간이건 간에 감정이 있는 존재는 함부로 버리는게 아니다. 어쨌거나 자살 충동에 시달린 그를 잡아준 것이 애완견 윌로우와 같은 처지의 노숙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던 자선 사업가 분들이었다니, 다행이긴 해도 씁쓸함이 밀려 오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가족들이 사라진 빈 자리를 같은 처지의 노숙자들이 다정하게 메꿔주는 과정들이 아마도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해도 속으로는 울먹이고 있는 그를 향해,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 살아가기 마련이니 겁 먹지 말고 두려워 말라고 다독이는 사람들 덕분에 그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끊임없이 그를 지치게 하는 우울증과의 사투는 계속되야 했지만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버림받은 노숙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저자가 다른 노숙자들과 어울리면서 세상에 눈을 뜨는 과정들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지고 있던 작품이다.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내려 간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던데, 바닥까지 추락한 인간이 어떻게 희망을 찾게 되었는지를 너무도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어 눈을 떼기 힘들었다. 진부하지도 않고,신파조도 아니며, 세상을 행해 원망이나 늘어놓는 책이 아니라는 것도 좋다. 그저 담담히 노숙자들도 인간이고, 그들에게도 귀 기울여 볼만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들려 준다. 물론 그도 자신이 노숙자가 되기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겠지만서도.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기 쉬운데,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견지하던 그가 존경스러웠다. 인간성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라는걸 그는 본능적으로 아는 듯했다. 자신을 지켜 낸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 책을 읽기전까진 난 자선이라는 것에 대해 별로 생각을 못했었다. 내가 곤궁해보지 않았기에  힘든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랐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노숙자들에게 밥을 주시는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한 끼의 식사가 주는 위안과 따스함, 그것의 위대함이야말로 이 책의 제목을 <샐리의 따뜻한 아침식사>로 짓게 한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의 노숙자 삶엔 애완견 윌로우도 있고, 시인 노숙자인 C도 있었으며, 그를 우울증에서 끌어준 의사와 간호사 목사도 있었지만, 가장 고마운 사람은 샐리네 였을테니 말이다.

 

만약 세상을 보다 선한 눈으로 보게 해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 한다면 ,이 책은 단연코 좋은 책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분이나, 인생이 파탄나서 어찌해야 할바를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한번 들여다 보심도 좋을 듯. 험난한 고비를 성숙하게 넘긴 어른에게 한 수 배울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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