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3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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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대작가로 불후의 명성이 보장된 중년의 괴테를 만난 베티나는 그와의 사이에 '섬씽"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괴테의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여자로써 그 정도의 극성이었다면 거기서 그쳤을 리는 만무, 괴테가 죽은 후에 그녀는 그와 주고 받은 편지를 서간집으로 내면서 그녀의 능력으로는 어림없었을 불후의 명성을 보장 받는다.

지적이고 냉정한 아네스는 남편 폴과의 결혼 생활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꾸려왔다고 생각하나, 나중에서야 밝혀지듯 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불안정한 정신의 소유자로 끝없이 남성편력을 전전하던 아네스의 동생 로라는 8살 연하의 남자 베르나르와 만나자 그 사랑만큼은 절대적일거라 믿지만 그 사랑 역시 한계에 이르자 무너지고 만다. 폴은 무너진 로라를 위로하다 그녀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깨닫고 아내가 죽자마자 로라를 새 아내로 맞아 들인다.

새 여자에 대한 해갈되지 않는 갈증으로 수많은 여자들을 전전한 루벤트는 어느날 더 이상 그녀들에게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으며 단지 남은 것이라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여인들과의 정사뿐이란 것을 알고는 씁쓸해 한다. 정숙한 아내인 줄 알았던 아네스도 실은 루벤트와 불륜관계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로라는 늙은 형부를 유혹해 아이도 낳았으나, 다른 남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그런 로라의 추파를 폴은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제스쳐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야기는 그렇게 산만하니 두서없이 흘러가는 통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 언뜻 종잡을 수 없어 보인다.



그렇게 이야기 자체만 두고 보면 연관성 없어 보일지 모르나 주제 만큼은 뚜렷하게 한가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전정한 사랑"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정말 진정한 사랑이냐는 것과 보이는 것 그대로가 진실인가 하는 것이었다.

우선 베티나의 경우를 보자.그녀는 자신과 괴테와의 있었던 일을 세기의 사랑으로 떠벌리고 다닌다. 나이차와 불륜이라는 것 때문에 이루워 질 수 없었던 애닮은 사랑으로...그녀의 떠벌임에 낭만적인 기질이 다분했던 로망 롤랑이나 릴케는 다양한 찬사를 통해 미화했고, 결국 그런 소동을 통해 그 둘의 사랑을 불멸이 되어 버린다. 작가가 제동을 거는 것은 바로 그 장면이다. 정말 그 둘의 사랑은 진실한 것이었을까? 작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밝혀 낸다. 내가 이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을 하게 된 것도 그 부분이였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것에 현혹된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환상에 매혹될 뿐, 즉 겉모습에만 치중할 뿐 그 내면은 보려 하지 않는다. 밀란 쿤데라가 정확히 보았듯이 베티나는 사실 전형적인 나르시스트에 불과한 정신병자였을뿐이다. 괴테를 사랑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랑 자체나 그 사랑으로 인한 자신의 불후의 명성을 사랑한 것이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를 직접 겪은 괴테 역시 알고 있었음이 이 책을 통해 드러난다.

괴테는 베티나에게 "자신에게서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낭만적인 사랑에 중독된 사람들에게는 보일리 없다. 베티나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숨긴 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 그것은 그녀가 결코 다른 인간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녀를 미화하는 반면 괴테의 아내는 오히려 무식한 뚱녀로 망각하고 만다. 여기에 작가는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우리가 추종하는 불멸의 사랑이  정당한 것인가 하고. 아니, 그렇지 않다. 진실이 배여 있지 않는 사랑은 다만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더냐고 작가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사람이 변덕스러운 것 만큼이나 사랑도 변덕스럽고, 변화무쌍하며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고,진실해 보이는 이면엔 거짓이 숨어 있는데다, 오히려 우리가 믿고 싶어하지 않는 평범함 속에 진실이 묻혀 있기도 하다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사를  꿰뚫어본 작가는 이제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가 걱정이다.이미 명망 높은 작가인 자신이 만에 하나 희극적인 종말을 맞는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그것을 두고 웃을까 하고 말이다. 자신의 존재완 상관이 없는 한 사건으로 자신의 존재가 영원히 각인 될것이 두려운 것이다. 자신이 죽고 난 뒤 그 누가 나서서 그것이 오해란 것을 변명해 주겠는가? 환상을 만들어낼만한 기회도 없이 죽어 있는 마당이니 오죽 갑갑할까 그는 너스레를 떤다.

천국에서 혹시나 베티나가 자신을 알아볼까봐 유치찬란하게 옷을 입고 다니는 괴테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상에서는 천상의 사랑이라고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사랑은 그러나 당사자인 괴테에게는 고문이었던 것이다. 불멸? 그런 것엔 신경쓰지 말라고 괴테는 헤밍웨이에게 충고를 한다. 이미지는 죽은 자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어차피 진실 보다는 다른 인간이 믿고 싶어하는 거짓, 즉 환상일 뿐이니 네가 통제할 수 없는것에 신경쓰지 말라고 쾨테는 조언한다. 그렇게 괴테는 (혹은 작가는) 진실보다는 보여진 것에 더 가치를 두고, 더 중요시하는 대중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사랑의 환상과 거짓을 까발리고 진실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이 책은 정말로 유쾌한 책이었다.내 기대 이상의 통찰력을 보여준 쿤데라,그가 이 책을  자신이 쓴 가장 슬픈 사랑이야기라고 말했을때 난 왜 그가 슬프다고 했을 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랑이 실은 거짓일 뿐이라고 고발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슬펐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하긴 그것을 까발리는 것이 그 누군들 유쾌하겠는가? 비록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사랑만큼은 진실이라고 우리 모두는 믿고 싶어하니 말이다. 어쩜 이 책에서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아마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그의 통찰대로 진실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환상을 쫓아 가보면 신기루일때가 많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 고맙기는 했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진실한 사랑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암울하게 느껴졌다.

애써 우리가 모두 다 그렇지는 않을 거라 위로해 본다. 환상이 아닌 자신의 마음속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나부터가 그러니까.이 책의 말미에 "여자는 남자의 미래" 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자들이야 말로 마음속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 갈 수 있는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기에 그가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보면서 리뷰를 마친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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