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직에서 질리도록 직장 생활을 해보지 않는 사람들에겐 남모를 로망이 있기 마련이다. 은퇴 날짜를 기다리며 어떻게 해서든 쉬는 날만 기다리는 직장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일하는 사람들을 한없이 낭만적으로 바라본다.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지 간에,병원이건 공항이건 학교건 도서관이건 건축 현장이건 전철이건 방송국이건 은행이건.... 그곳이 마치 천혜의 자연환경이 되는 듯 몽환에 젖은 눈으로, 왠지 그곳이 인간의 온기와 열정과 능률과 적절한 의사 소통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친절이 난무하는 곳인 듯 생각 되어 지는 거다. 외부인의 시선이란게 원래 그런거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그림자처럼 배경에 녹아들어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잡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외부인이라면 더욱이나 더... 

 

그런 사람 가운데 공항에 대한 욕망을 적절히 주체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책의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일 것이다. 공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이 책 저책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더니만 이번엔 아예 공항에 취직을 해버렸다. 일주일짜리 임시직이지만, 공항에서 호텔도 잡아주고, 쿠폰도 주며, 통로에 책상까지 마련해 주니, 대박을 터뜨린 듯 표정을 주체 못한다. 평생 지나가는 이방인이었을뿐인데, 이제 공항의 일부분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정말로 소원을 푼 모양이다. 줄곧 다소 심각해 보이는 표정만을 보여주던 서른 아홉의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그는 펄쩍 뛰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 짐작으론  아마 테마 파크에 놀러 가기로 했다는 막 아빠에게서 들은 아이처럼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면 그랬을 것 같으니 말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렇다. 알랭 드 보통은 공항 관계자로부터 히드로 공항에 일주일간 체류 하면서 그에 대한 글을 써주지 않겠는가 라는 제의를 받게 된다. 광고 회사가 만든 선전문구가 아닌 전문 작가의 눈에 공항이 어떻게 비춰지는지 써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더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지 않을까 라는 것과 자신들에겐 일터일뿐인 공항이 작가의 예리한 눈에 어떻게 비춰 질지도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그렇게 물었겠지. 돈 많은 사람들에게 고용된다는 생각에 잠시 주춤한 저자는 하지만 공항이라지 않는가?...에 생각을 바꿔 먹는다. 그렇잖아도 딱 한달만 공항에서 일해보면 재밌을 것 같았는데, 어찌 내 마음을 알았누라는 생각에 그는 과거, 돈 많은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글을 써 댔던 출중한 문인들의 선례를 들먹이며 (마지 못해 받아들인다는 뉘앙스로) 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신이 나서 공항으로 출근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주일간 체류하면서 얻어낸 글이 바로 이 책이다. 

 

일주일간의 여정이라 그런지 얇다. 그 두께에도 혹시나 독자들이 지루할까 우려 되었는지 글이 전부가 아니라 1/3 정도는 사진이다. 요즘 출간되는 추세가 이렇게 사진 반, 문장 반으로 이뤄진게 많던데, 솔직히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증명용으로 한 두 장의 사진은  괜찮지만서도, 앨범을 보는 것도 아니고, 사진으로 도배한 책은 아무래도 본전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너무 금방 읽히니 말이다. 뻥튀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랄까. 한번은 뻥튀기도 괜찮지만 너도나도 뻥튀기를 내놓으면 그건 곤란하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얇다는것을 제외하면 별 불만은 없는 책이었다. 사진이 많다고 투덜댔지만, 공항 통로에 내 준 책상이랑 의자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마냥 좋아하며 글을 쓰고 있는 알랭 드 보통의 사진은 진기하고 귀여웠다. 영국인다운 점잖은 무게가 없었다면 빌 브라이슨보다 더 방방 뛰고 다녔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천진한 모습이다. 마치, 평생을 백수로 살다가 간신히 직장을 얻게 된 괴짜처럼, 회사가 시키는 것은 무조건 다 해 보이겠다는 열의가 보인다. 더불어, 왠만하면 이 공항에 좋은 것만 보겠다는 자세 역시... 냉소적인 지성인임을 자처하고 다녔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바로 허물어지는 그가 별로 나쁘게 보이지 않더라. 오히려 그에게 아직도 자라지 않는 어린 아이같은 심성이 있다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순진한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아 발톱을 세우고 살아가긴 하지만, 우리의 근원적인  마음속엔 그렇게 어린 아이의 순수함이 남아 있는게 아니겠는가. 비록 남에게 보여주기 남새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서도 말이다. 

 

그렇게 일주일간 공항에 근무한 그의 일지엔 무엇이 쓰여져 있을까? 공항을 들고 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과 파일럿을 만난 이야기, 공항을 움직이고 있는 컨테이너와 식당과 청소직원들과 목사와 서점과 상점과 정비소와 보안요원들까지... 공항이란 거대한 기구를 요란하지 않게 움직이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는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 내려 간다. 그래서, 그는 공항에 대해 이제 더 많이 알게 되었을까? 다시는 공항에 대한 로망에 젖지 않을많큼? 아마도 그래 보인다. 적어도 난 그랬으니까.

 

의외인 것은 그의 이야기가 신선하긴 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별달리 특출난 것은 없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책처럼 별난 것들을 기대한 모양이다. 공항 역시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고, 일의 특성만 제외 한다면 다를게 없을 거라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공항이라는 장소가 제공하는 환영에 한없이 낭만적일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뭔가가 있을꺼야 라고 생각한 것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아마도 그건 다른 곳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에겐 일상이고, 지루한 작업임에도, 막상 자신의 일이 되기 전엔 마냥 재밌는 일 같이 여겨지겠지. 일주일, 딱 일주일만 근무한다면 좋게 보일지도 모르지만서도... 알랭 드 보통 역시 일주일의 근무가 괜찮았던 모양이다. 다른 직장에서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상상해보는 걸 보면. 어쨌거나 보통은 자신의 로망이던 공항 근무를 해냈다. 그를 통해 우리도 공항이 어떤 곳일지 간접 경험을 했고. 그나 독자인 나로써나 그닥 나쁜 경험은 아니었던 것 같다. 타인의 신발을 신지 않고서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하니, 공항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공항에 대한 로망을 접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여 이참에 공항에 대한 로망을 접게 해준 보통에게 감사드린다. 잠깐이지만 좋은 읽을 거릴 준 것에 대해서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