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온 장미 도둑 - 터키 사진작가 아리프 아쉬츠의 서울 산책
아리프 아쉬츠 지음 / 이마고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리프 아쉬츠는 내게 낯 익은 작가다. 재 작년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을 감명 깊게 읽은 후 한동안 그의 다른 작품은 없을까 궁리하던 차에 그가 서울에 한동안 살았으며 그 동안의 느꼈던 것들을 모아 책을 냈다는 말에 반색을 했다. 뭐랄까. 너무도 멀게만 느껴지던 대 스타를 우리 동네에서 만난 기분이랄까?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저자가 서울에 1년 반이나 체류 했고, 또 서울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우쭐했었다. 와,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구나라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함과 동시에, 실크로드를 그렇게 통찰력 있게 따라 내려 가던 모험심 강한 그가 우리나라를 어떻게 해부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다행히도 내가 궁금할 것을 알았는지 그는 자신이 느낀 것을 이 책 안에 다 풀어놓고 있었다. 물론 내가 기대했던 것보단 자세하지 않아서 실망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맘에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스케일이라는 면에서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과 비교가 안 된다. 실크로드완 다르게 한국이란 곳이 터키인들의 정서와도 차이가 있었겠고 말이다. 오기전에 공부를 하긴 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생소한 미지의 나라에 와서 이만큼 책을 써 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거야, 라면서 위로를 했다. 물론 이것은 전작에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니 오해는 마시길. 그 책에 비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지, 이 책 자체가 부족했다는 말은 아니니 말이다. 무엇보다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은 많은 나라를 지나면서 이야기 자체가 풍부했겠지만, 우리나라야 역동적이라는 것 외엔 단일민족 아니던가. 차이가 나는게 당연하다.

 

어쨌거나 <실크로드>에서 익히 짐작한 대로 그는 유머 감각 넘치는 장난꾸러기였다. 그가 우리나라에 맞지 않았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그는 우리나라에 딱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야말로 익살 빼면 시체 아닌가? 그런 그의 유머 감각은 다음 문장에서도 빛이 난다. 내가 제일 웃었던 장면인데... 


 

" 어쨌든 생존을 하기는 해야 했다. 친구들은 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면서 몇몇 단어를 가르쳐주었다. 나는 아직도 '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든다 '미안합니다' '맛있게 드셔요' 같은 말은 모른다. 하지만 술자리에서만큼은 한국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하기에 나의 어휘사전은 충분한 것 같다. 여기 나의 한국어 어휘 사전이 있다. 

 

아줌마: 옷이 화려하고 지하철에서 자리를 빨리 차지하는 중년 아줌마 

아이구 죽겠다.:어딘가 앉을 때 하는 말, 한숨을 길게 내쉬면 더 효과적이다. 

먹고 죽자 : 건배라는 뜻 

언니야~~~: 술집에서 주문할 때 하는 말 

맥주, 소주, 백세주, 복분자주, 막걸리: 내가 좋아하는 각종 술의 명칭 

죽여라 죽여 : 뭔가 내가 실수했을 때 상대에게 머리를 들이대며 하는 말 "

 

먹고 죽자가 건배라는 말에 큭큭 대로 웃고 말았다. 이 사람 한국 사람 다 됐군 싶다. 더군다나 개성 넘치고 기운 센 한국 아줌마들에 반했다는 그가 밉지 않았더라. 술자리를 좋아하고, 노래방에선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며, 한번 김치를 맛 본 뒤 한국 사람들보다 더 극성 맞은 김치 매니아가 되어버린 그를 안 좋아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가끔 지인들을 위해 거리의 장미들을 꺾어 선물했다고 하는데, 내가 그 장미들의 주인은 아니지만 다 용서해주고 싶었다. 뭐, 장미가 대수랴, 애교로 봐주자. 그만큼 다정하게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도 드무니 말이다. 한국의 정을 이해하는 인간미 넘치는 외국인을 매일 만날 수 있는건 아니질 않는가. 아마도 그를 가이드한 이 책의 역자 이 혜승님도 나의 견해에 동조하리라 본다. 그나저나 그의 말에 의하면 구 별로 다 장미들이 다르단다. 여유롭게 서울을 탐색하고 다닐 수 있는 자만의 관찰력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그가 우리나라에 대한 찬가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특히 거리마다 교회가 넘쳐 난다는 것과 그들이 아프간에 들어가 선교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어이 없어 하는 것엔 나도 동감이다. 아리프 아쉬츠님! 알아주시기 바래요. 당신만큼이나 우리도 그들이 이해 안 된다는 것을요. 무엇보다 이슬람 사람들에게 선교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그들에게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그런 기독교 신자들을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하진 말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외국인의 눈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신 분들에겐 괜찮은 책일 듯. 저자의 인간미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높이긴 하나, 생각할 거릴 던져주는 담론이나 엄청난 통찰력등을 기대하고 집어들만한 책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의 시선에 잡힌 서울의 모습이 약간은 편향되어 있어 갑갑한 느낌을 주었다. 서울의 건축물들이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공감을 하지만, 밖에 나가서 보는 서울의 모습은 그의 렌즈에 잡힌 모습보단 다채로워 보이니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그보단 서울에 오래 살았다는거 아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