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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20살의 어여쁜 딸을 백혈병으로 잃어버린 작가가 딸을 그리며 쓴 병상일지다. 일상이 계속될 줄 알았기에 별로 소중한 줄 모르고 살던 저자는 고2가 된 딸 서연이가 이유없이 피곤해 하는걸 무심히 넘긴다. 딸이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는 진단에 혼비백산 한 가족들은 황급히 치료에 나서기 시작한다. 열악한 병실 환경, 죽는 것보다 더하지 않는 치료 과정, 일주일만에 450만원이 나온 치료비, 딸 침대 옆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저자는 자신이 참담한 세상이 발을 내디딘 것에 놀라고 만다. 근사하고 멋지게 죽어가는 백혈병이란 그야말로 드라마속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던 것이다. 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만이 쓸 수 있는 환상이라는 것을.
종종 사람들이 가진 환상들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스러운 것은 그들의 환상이 깨지는 걸 볼 때이다. 환상이 깨지는 것은 현실과 맞닺뜨렸다는 뜻이고, 만약 그것이 자식의 죽음이라면, 아무리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 해도 환상 속에서 사는 것이 더 낫다. 환상속에 산다고 해서 죽을만치 고통스러울리는 없겠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회복할 길 없는 상처를 부여잡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더군다나 죽음이란 타협이 안되는 상대다. 아무리 내가 잘못 했다고 용서를 빌어도, 환상속에 살았던 것을 회개해도, 현실에 발 딪고 살아 보겠다고 다짐을 해도 죽음이란 놈은 우리를 잘 봐주지 않는다. 냉대를 받고 거절 당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우리는 마음에 화상을 입게 된다. 그것도 새 살이 날까 의심스러운 3도 화상을... 과연 그럴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아직도 내가 풀지 못한 숙제중 하나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보면서 감동적이던 것은 가족간의 넘치는 사랑이었다. 어떤 병이나 다 그렇겠지만 간병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백혈병이란 무시무시한 병과 싸운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가족들을 둔 서연이야말로 정말로 축복받은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딸을 향한 애 끓는 그리움이나 처절한 안타까움이 해소되진 못할겠지만서도.
너무도 일찍 떠난 딸을 그리며 쓴 논픽션,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던 서연이나, 오늘도 내일도 그 딸을 잊지 못할 엄마의 모정이 안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책이란 점에서 평가를 하자면, 병이 악화되는 과정들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데 그치는데다 위급 상황이 되면 주님을 외치는 것이 별로였다. 쉽게 말해 드라마나 영화나 책에서 보던 다른 병상일지와 별다를게 없었다는 뜻이다. 비록 저자가 드라마 작가라고는 하나, 아마도 아직까진 딸의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새로운 시선으로 상황을 해석해내진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그녀가 느낀 것이 이것이 다 던가. 이것만으론? 좋은 책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죽음에 대해 슬픔이나 감상을 갖게 되는건 누구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걸 읽기 위해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난 그렇다. 타인의 감상을 읽으려 책을 읽지 않는다. 그것은 진부할 뿐이니까. 그보다 직접적인 이유를 대라면 그것만으론 고통이 치유되지 않는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더 파고 들어가야 했다. 자신이 아직까지 이해하지도 소화하지도 못한 일들을 써 내다니, 일기와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죽음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면, 우리는 최대한 답을 알아내야 한다. 그것이 끝나지 않는한 우린 결코 편히 쉴 수 없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