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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떠나가면
레이 클룬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사랑하는 아내와 깜찍한 딸을 둔 댄은 끝없이 다양한 여자들의 세계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질 못해 암스텔담의 여자들 반과 자고 다니는 남자다. 자신을 심각한 고독공포증이라고 소개하면서 --매우 운 나쁘게도 불치의 케이스?--그다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열심히 설명하는 댄. 난 섹스 중독을 고독 공포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걸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홍보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뉘앙스를 확실히 이용하는 모양이던데, 그렇다고 본질이 달라지겠는가? 오히려 그를 더 우습게 보이게 한다는걸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천성으로 바람둥이라는 그가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은 사별하고 만 과정을 늘어놓고 있는 소설이다. 다른 남편들과는 달리 자신은 그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켰음을 자랑으로 내세우면서... 물론 그녀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외도를 하고, 그녀가 죽어가는 경과를 충실하게 불륜녀에게 보고를 했으며, 한번의 쓰리썸과 음주 운전에 의한 차 전복, 에스터시 복용등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은 행동도 보여주긴 했으나, 죽어가는 아내를 지켰다는데 그 정도는 봐줘야 하는거 아니겠는가.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물론 그의 아내 역시 그런 그를 용서해주고,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고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오래 전 섹스 & 시티에서 본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랐다. 섹스 & 시티의 주인공중 하나였던 샬롯은 얼마전 상처했다는 근사한 남자를 만난다.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는 그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 힘들다면 징징 댄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순정파 남자가 어디 있을까 싶어 감동한 샬롯은 그날로 그와 함께 잔다. 그 다음날 그는 아직도 아내를 못 잊기에 앞 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 경쟁심에 사로잡힌 샬롯은 점수를 따기 위해 아내의 기일에 묘지로 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무덤으로 몰려온 일단의 여인들과 만나게 된다. 결국 그 남자의 고통이란 여자들을 꼬시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 에피소드가 생각난 이유는? 바로 이 책의 작가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도, 심지어는 죽어갈 때도 외도를 일삼던 그가 아내가 죽은 뒤 이런 책을 내다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더니, 아마도 자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 말마따나 버리고 떠난 것은 아니니 말이다. 과연 그의 진심은 무엇이었까? 진짜 아내를 사랑했을까? 아니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기나 하나? 그녀가 죽어가던 1년 반의 세월동안 방황하며 비틀거리면서 최대한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해 안달이던 그가 그녀가 죽어간다니 갑자기 착해지는 모습엔 진저리가 났다. 어쩌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라면 저자 자신의 개차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일 것이다. 실은 자신이 그런줄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서양식 사고 방식에 사랑이란 아름답고 섹시하고 건강하고 나의 외도를 눈감아 주는 중에만 가능함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사랑이 이런거라면....우린 사랑이란걸 쫓을 이유가 있는 것일까? 쓸쓸하게 눈을 감는것보단 그래도 그것이 더 나을까? 아마도...
하여 이 책을 보면서 가장 감동한 것은 작가의 사무치는(?)사랑이나 아내와의 사별 장면들이 아니라, 네델란드의 안락사 체계였다. 죽을 때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내 역시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해 가는 반응이다. 어차피 죽을텐데 이왕이면 고통을 줄이는게 좋지 않겠는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끔찍한 고통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만큼 인간적이지 못한 것은 없어 보이니 말이다. 죽음은 힘들다. 삶이 힘들때는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선 생명의 존귀함을 들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소극적인 안락사가 인정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