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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평점 :
책을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리뷰 쓰려 다시 표지 사진을 보니 안도 다다오라는 양반 아무래도 건축가라기보단 뱀파이어 필이시다. 만약 내가 건물주었다면, 그래서 안도 다다오에게 집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면 " 어디, 저 얼굴에 멋진 건물이 나오겠어? " 라는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학력이 출세의 전부라는 일본에서 고등학교만 나온 뒤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신 분이라니...꺼림칙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꺼림칙한 기분은 그냥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다. 왜냐면 나의 의구심과는 상관없이 그는 세계적으로 너무너무 성공한 건축가라 내가 아무리 돈을 싸들고 쫓아 다닌다고 해도 절대 내게 집을 지어줄 리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보통 사람들은 만나기도 어려운 분이라는 뜻이다. 더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그는 일반 주택은 잘 지어주지 않는단다. 어쩌다 지어준 집들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편한 집이란 개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에콜로지 어쩌고 저쩌고 우리가 떠들기 한참 전부터 그가 친환경적인 요소를 염두에 두고 집을 지었기 때문이란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만들고, 하늘을 최대한 바라보자는 취지하에 그가 만든 최초의 집엔 방에서 다른 방으로 가자면 옷을 입고 신발을 신어야 한다. 옛날 우리나라 뒷간 가는 것처럼 아들 방 가는데도 우산 들고 가야 하는 식이다. 그게 싫으면 그냥 비를 맞거나. 불편해 뵌다. 난방 시설도 안 해놔서 겨울엔 춥기까지 하단다. 놀라운 점은 집 주인들이 아직까지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것과 70년대 당시 신선한 발상이었다면서 그가 건축가로 성공하는데 발판이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그런 참신한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안목과 성실함이 있었다니, 부러웠다. 안도 다다오라는 이 괴짜 양반을 키운 토양이야말로 바로 그런 것이었을테니 말이다. 나라면? 게을러서 그런데서 못 산다. 그래서 예술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고 하는가보다.
제목 그대로 안도 다다오란 일본 건축가의 자서전이다. 보통 자신의 개인적인 성장과 사생활을 다룬 자서전과는 달리 그가 만든 건축물의 자서전이라고 할만큼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는게 특징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건축물이 그렇게 생겨날 수 밖엔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쌍둥이로 태어나는 바람에 외가댁에 보내져 외할머니 손에 자란 안도 다다오는 어린 시절을 공부와는 담을 쌓은 채 개구장이로 명성을 날리며 자란다. 남자는 자고로 제 밥벌이만 하면 된다며 아이를 풀어놓고 키우신 외할머니, 그런 외할머니의 혹독한 훈육 아래 안도는 자연스럽게 자연과 실리를 쫓는 성향이 몸에 배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잠시 복서 생활을 한 안도는 자신에게 챔피언이 될 자질이 없다는걸 깨닫고는 미련없이 다른 직업을 알아본다. 노가다로 인테리어 일을 하던 안도는 유명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집을 보고 건축가로써의 꿈을 키우게 된다. 돈을 모아 세계 여행에 나선 그는 유럽의 건축물이 건축의 토대가 될 수밖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식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필요에 의해 공부를 시작하고 곧 회사를 차린다. 하지만 넘치는 자신감에도 그를 알아주는 건축주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데....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회사를 차린 그가 현재의 성공을 일구기 까지의 과정을 무뚝뚝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었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세계적인 건축가라...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 책을 보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건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것이겠지만서도. 안도 다다오, 그 만의 열정과 아이디어, 뚝심등이 일궈낸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작가의 약력을 알면 그 책에 대해 더 이해가 잘 가듯이, 건축가의 개인사가 그가 만든 건축물에 반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한 개인의 개성과 창작물은 별개일 수 없다는 의미다. 그의 성격 하나하나가 그의 건축물에 반영되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에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과 개성의 수만큼이라는걸 깨달았다. 그리고 건축물이 예술이 되려면 건축가의 개성이 온전히 반영될만큼 독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도...노출 콘크리트 공법은 별로 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최대한 절제된 공간 배치, 투박하지만 견고한 구조물들, 하나에서 열까지 배려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어 놓은 구조를 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활용하게 놔 두는 것, 빛을 최대한 이용하는 구조나 주변 환경에 녹아 들어가게 설계를 하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최소한의 인원만 가지고 게릴라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 등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로 명성을 날리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더라. 그가 만들어낸 것들이 한결같이 다 독특했으니 말이다. 너무도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라, 건축도 예술일 수밖엔 없다는 걸 깨닫게 하기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간간히 들어가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들을 보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으나, 책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좀 지루한 감이 있어 애매작으로 넣는다. 아무래도 안도 다다오 자신이 전업작가는 아니다보니 글에는 한계가 있다. 재밌는 것은 그 양반의 성격이 글에도 반영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투박한 건축물 만큼이나 투박하고 무뚝뚝한 문체, 짐작컨대 별로 친절하신 분은 아니시지 싶다. 올곧은 정직함과 패기, 밀어 붙이는 박진감은 차고 넘치시는 분이겠지만서도. 어쨌거나 건축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번 들여다 보심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