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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 - 미술가, 딜러, 경매 하우스, 그리고 컬렉터들의 숨은 이야기
리처드 폴스키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우연한 걸작>을 너무도 감명깊게 읽은 탓에 그 책의 역자인 박상미님이 번역한 책을 다 읽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 걸린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 읽어보니 물론 <우연한 걸작>에 겨룰만한 걸작은 아니었으나, 안 읽으면 섭섭했을 만한 책이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앤디 워홀을 사기 위한 12년간의 여정을 그린 것으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낄 독자들을 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술계의 속사정 역시 생생하게 까발려 주고 있다는게 특징이다.
미술을 보는 안목은 있으나 돈이 없는 관계로 딜러에--쉽게 말해 미술품 장사-- 만족해야 했던 리처드 폴스키는 어느날 앤디 워홀의 작품을 갖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당시는 앤디가 뜨긴 했지만 생존중이여서 그다지 가격이 높지 않을 때였다고 한다. 작품성 높지만 잘 안 알려진--다른 말로 하면 싼 --작품을 알아보던 폴스키는 그 와중에 앤디 워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작품을 살 기회를 영영 놓친 것이 아닌가 절망하던 그가 마침내 12년만에 앤디의 자화상을 얻게 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들이 그려진 책인데, 90년대를 거치던 그 시기가 미술계의 활황과 불황을 두루 거치던 시기라서 작품을 사고 파는 과정들의 이야기가 마냥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놀라워던 점은 예술품의 구매 과정이 예술 애호의 측면이라기보단 주식 거래와 비슷했단 점이었다. 다시 말해 투기라는 것이다. 단지 주식은 유동성이 비교적 큰 반면, 예술품은 그렇지 않다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하여 순진한 눈으로 예술 작품을 바라보던 나로써는 이것이 나중에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로 예술성을 판단한다는 딜러들의 심리가 가히 놀라웠다. 그런면에서 보면 가난한 예술가는 싫다면서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머리를 썼다는 앤디 워홀이 이해도 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기는 구도에서 곰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거기에 미술작품을 사는 돈 많은 컬랙터 들이나 괴짜 딜러들, 경매 회사, 천재성 만큼이나 화려한 뒷담화를 남겨주던 화가들의 이야기 역시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마치 작가가 " 나, 이 책 성공 못 시키면 굶어 죽어요 "라는 자세로 미술계를 적나라하게 까발려 주고 있는데다 미술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이야기들이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부자들의 허세와 가식, 거만과 거드름을 누구보다 싫어하던 작가 역시 그들 못지 않게 속물이라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 하던지... 부자들이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는 사치의 장이 되어버린 미술계를 보면서, 천재의 재능과 광기가 빚어낸 예술 작품들이 결국엔 사고 파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은 날 조금은 씁쓸하게 했다. 하니, 누구의 어떤 그림이 몇 백억에 팔린다는 소리에 그저 솔깃해 하는 우리들은 한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우린 그 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가격에 경이를 보낸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과연 그것이 과연 그것을 창작해 낸 작가의 의도였을까 하는 것도...
어쨌든지 간에 미술계가 그럴듯하게 쳐 놓은 환상을 제대로 깨부셔주는 괜찮은 책이었다. 어깨에 힘 들어가지 않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유머감각이 넘치는 것도 장점인데, 아마도 사석에서 이 책의 작가를 만나면 무척 재미있게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추측 된다. 쉽게 읽히는데다,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하고, 앤디 워홀에 대한 새로운 면을 일깨워 주는데다, 허상도 부셔주는 판이니, 미술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로도 추천하고 싶어진다. 그렇다. 예술을 한다고 해서 어디 다를게 있겠는가. 인간적인거, 그것이야말로 어디서나 늘 통하는 것이지 싶다. 또 그것이 정답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