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결혼했다 -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
마리나 레비츠카 지음, 노진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평소 사회주의적 좌파에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지녔다고 생각하던 나데즈다에게 여든 넷의 아버지가 결혼을 통보해 온다. 상대는 그녀보다 열 살이나 어린 서른 일곱의 우크라이나 여자, 아버지가 노망 난게 분명하다고 판단한 나데즈다는 2년전 엄마가 돌아가신 뒤 관계가 소원해진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길길이 날 뛰는 언니와 아이처럼 달래는 나데즈다의 협공 속에서도 아버지의 결심은 흔들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결국 새 엄마가 될 발렌티나를 만나 본 나데즈다는 한층 더 충격에 빠진다. 두꺼운 화장에 큰 가슴을 강조하는 요란한 차림새의 그녀는 한마디로 천박함의 결정체였던 것, 이젠 아버지가 그 여자에게 빠졌다는 것이 놀라운게 아니라 그녀가 아빠와 결혼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 안스러운 나데즈다는 어떻게 해서든 그 둘의 결혼을 저지하기 위해 앞장을 선다. 하지만 십대도 아닌데 팔순의 아버지를 딸이 어떻게 막겠는가? 결국 결혼식을 치른 아버지는 가슴 크기 만큼이나 무자비한 발렌티나와 함께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걸 알게 된다. 아이 하나 잘 키워 보겠다고 자신의 나이 곱절이나 되는 늙은 영감하고 결혼한 발렌티나, 주제 파악은 고사하고 발렌티나의 딱한 처지를 이용해 젊은 아내를 맞이한 한심한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데즈다는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아버지의 전화에 다시 한번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는데...

 

식상한 제목때문에 별 기대를 안 했었는데, 예상 밖으로 참신하게 소재를 풀어내던 책이었다.  뜬금없는 아버지의 결혼 선언에 엄마의 유산 문제로 사이가 소원했던 딸들이 "새엄마 떼어내기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친해지는 과정들 역시 흥미진진했다. 자고로 내분을 잠재우는데는 공통의 적만큼 좋은게 없는가보다.  한없이 난감한 상황들을 설득력있게 풀어나가는 작가의 재치가 돋보던데, 작가 자신의 집안 문제를 쓴 거라 그런가 자연스러운 전개가 마치 내 일인양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넘치지 않는 유머 역시 일품으로, 이렇게 추잡한 소재를 가지고 웃긴다는게 쉽지 않다는걸 감안하면 잘 쓴 책이긴 한 것 같다. 그나저나 남의 일이니 웃으며 읽었지만, 만약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이라면 절대 웃음이 나오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아빠가 결혼한다는 황당한 상황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킨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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