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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맨
믹 잭슨 지음, 강미경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언더 드라운드 맨이라는 제목이 지하인간을 떠올렸다. 지하인간을 둘러 싼 SF물인갑다 했는데. 기괴하다는 점에서는 공통되긴 했지만 SF물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하인간을 둘러싼 이야기도 아니었고... 초반 하도 지루하길래 안 읽으려 했는데, 그럼에도 뭔가 잡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이어지는 지루한 전개, 6개월이란 기간 동안의 괴짜 공작의 일지임에도 커다란 사건이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없음으로 인해 이야기는 참 더디게 이어졌다. 보통 같았으면 초반 1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던져야 함이 정상. 그럼에도 이 책은 그러지 못했다. 색다른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궁싯거려 봤지만 뭔지 딱히 잡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인내심을 가지도 읽다보면 읽힌다는 것 외에는... 그러니 이 책을 어쩌다 집어드신 분들은 천천히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찬찬히 문장을 씹어 가는 동안 재미를 느낄 수 도 있으니 말이다.
소설의 배경은 1800년대, 괴짜 공작으로 유명했다는 제 5대 포틀랜드 공장 윌리엄 캐번시디 -스콧-벤딩크 공작이 죽기 전 6개월의 일기를 적어 내려간 것이다. 많은 돈과 지위를 타고 태어났지만 평생 홀로 고독하게 살았던 공작은 인간과의 접촉을 두려워 한 나머지 지하로 터널을 파고 그 길을 지나다녔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천제 자폐아가 아니었을까, 의심되는 그의 기행은 지도에 대한 집착이나 뼈에 대한 관심으로도 표출이 된다.
당시로써는 상상도 못하는 기행을 해대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기형아니, 정상이 아니니 괴물이니 라는 말로 그를 이해했다고 한다. 과연 그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바로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 아닌가 한다. 바깥 세상엔 괴물로 비쳐진 그가 실은 지극히 섬세한 사람이었고, 남에게 두려움을 주기보단 남을 두려워 한 사람이었으며, 너무도 민감한 나머지 세상과의 절연을 하게된 심약한 사람이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추하게 늙어가는 자신을 추스리는 것도 힘들어 하던 그는 나날이 약해지는 자신의 몸때문에도 고민이 많다. 그런 그를 너무도 자상하게 돌봐주는 시종 클레멘트, 그는 노인을 마치 한 돌이 된 아기처럼 돌봐준다. 자신의 주인이 공작을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고, 또한 둘 사이에 계약 관계를 넘어선 우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공작의 내면이 드러난 일지와 그를 바라보는 이웃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 공작은 어떤 모습일까? 심약하고 섬세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유머를 구사할 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으며, 인간 다운 도리를 다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귀족이라는 신분에 얽매여 다른 사람들을 천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 대하는 열린 마음과--열린 마음이라서라기 보단 신체가 워낙 부실한 것에 원인이 있는 것 같지만---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끝장을 보는 열정과 오래전 거절된 사랑을 잊지 못하는 로맨티스트였다. 말하자면 이웃 사람들이 말하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고 보듬고 감싸 줘야 하는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결국 완전히 미쳐서--물론 그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 미친게 아니지만-- 파국으로 끌려 가는 모습은 참담하기만 했다. 결국 그는 시대를 앞서 나간 사람이었을까? 그가 현대에 태어 났다면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을 남기면서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천천히 읽어내려가면 귀여운 구석이 있는 소설이다. 어디에도 존재할 것 같지 않는 괴짜 공작을 내세워, 과연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또 우리가 선입견을 버리는 것은 또 얼마나 쉬운지 생각하게 했다. 실상을 알게 되면 그나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니 말이다. 영국에 실존했다는 괴짜 공작의 생활이 궁금하신 분들은 집어 드셔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