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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쿳시, 그가 <추락>으로 노벨상과 부커상등등을 탄 것은 이해간다. 좋은 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내어 놓은 그의 책들을 보면 그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것은 실수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을 보면선 그런 생각이 한층 더 확실해 졌으니. 어찌된게 그에겐 작가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인간애가 부족해 보였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잘못 본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의 책을 보면 볼수록 그런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도무지 왜인지 모르겠다. 부디 잘못 본 것이길 바라마지 않으면서...
다른 책과는 다르게 세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노 작가가 쓴 세상에 대한 짤막한 견해들과 노 작가가 젊은 여인에 대한 생각,그리고 그 여인이 노인에 대해 느낀 생각들. 이야기는 이렇다. 세탁실에서 우연히 만난 필리핀 여인에게 반한 작가인 나는 그녀에게 타이핑을 부탁한다. 타이핑보단 육체적인 감상이 목적이란 것을 아는 두 사람, 모르는 척하면서 돈이라는 매개체로 인해 그들은 엮이게 된다. 노작가의 말을 받아 적으면서 차츰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게된 여인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게 되고, 이에 작가는 저의기 만족한다는 결론.
이런걸 늙은 남자의 판타지라고 해야 겠지? 젊은 여자가 그의 고상한 식견에 반해 감화를 받은 나머지 그를 진정으로 보게 된다는 것 말이다. 하이틴 로맨스를 보면서 10대의 철없는 환타지에 거북함을 느끼는 것처럼 , 이 책을 보면서는 늙어서 매력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남자의 환타지를 목격한 것 같아서 몹시 기분이 나빴다. 무엇보다 그 작가라는 분이 여자인 내가 보기엔 전혀 매력적이지 못함에도 작중에 나온 여자가 감화된다는 설정은 웃기기 까지 했다. 작가가 책 속에서 말한 것처럼 쿳시는 여자를 잘 모르지 않나 싶다. 그건 비단 이 책 속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그간 반복되게 느꼈던 것들인데, 이참에 쿳시는 독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여 왠만하면 여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우는 피하가시는게 낫지 않는가 한다. 정말 그는 여자를 모르니 말이다 .죽었다 깨나도 모르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자신의 환상을 은근슬쩍 이런 책을 통해 고백하는 이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어쩜 놀라운 것일지도. 거기에 신문만 보고 사시는지 그가 세상에 내미는 견해들이란게 어찌나 공감이 안 가던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 이젠 잘 모르시는 것이 아닐까 싶은 부분도 있었다. 무조건 냉소적이고 무조건 비판적이면 멋지고 올바른 견해라고 그는 착각하고 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