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이 일이란 것이 사람들에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뛰어 다니면서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에세이다. 화물선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 공항에서 바라본 물류의 거대한 흐름, 대박 비스킷을 생산해 내기 위한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외부에서 보기엔 사소하지만 그들에겐 심각한---, 개인에게 진정으로 적합한 직장을 알려주는걸 사명으로 여기는 직업 상담사, 현대의 신화라고 보아지는 로켓 발사와 관련된 사람들, 경제적인 면만 따진다면 투자대비 형편없는 실적을 기록하는 화가의 현주소, 존재한다는 것만 알 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송전탑에 관심을 가지는 전기 기술자들, 지루한 일만큼이나 지루한 사람들임이 판명된  회계사들, 평균적인 기준에선 약간씩은 벗어난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한 창업자 집단, 비행기를 공중에 떠 있게 하는데도 다양한 비지니스가 존재하더라는 사실을 보통은 이 책 하나를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10개의 목록에서 짐작되시겠지만, 사람들에게 익히 잘 알려진 분야가 아니라 생소하고 주목을 받지 못한 곳을 파고든 점이 우선 신선하게 다가왔다.  공항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과연 저 사람들은 어디서 와서 무슨 일들을 하는걸까 궁금했던 나로써는 보통 역시 같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으니... 거기에 슈퍼마켓에서 칠레산 포도를 사고, 전기 코드를 꽂아 인터넷을 사용하며, TV를 보며 과자로 군것질을 하면서 아무생각없이 살아가는 내 일상이 실은 많은 사람들의 노고의 집적이란 사실을 알게 된 건 무척 흥미로웠다. 전세계 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함으로써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뭐랄까, 이 지구란 별이 새롭게 보여졌다고나 할까.  적어도 이 지구가 소수의 사람들이 장악해서 돌아가는 곳이 아니구나 싶어 더 정감있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런 느낌은 지구촌 곳곳에 포진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 낮설지 않게 들려주던 보통의 다정한 시선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바로 여기엔 사랑 타령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랑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도 드물다보니 그에 관한 책들이 넘쳐난다는 점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인생에 어찌 사랑만 있겠느뇨, 하여 사랑 외에 알고 싶은게 많은 나는 이젠 사랑타령이 지겹다 못해 진저리가 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에 냉소적인 사람이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흔해빠진데다 들어봐도 거기서 거긴 사랑타령은 식상하단 의미일 뿐... 사랑에 강박적인 사람일수록 오히려 추한 사랑을 하더라는 통찰 또한 사랑에 대한 관심을 멀어지게 했다. 하여간 사랑 타령이라면 끔찍한 내게  보통이 그의 최신작인 이 책에서 사랑이란 소재가 아닌,  이 세상을 움직이는 다른 힘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걸 보고 매우 반가웠다.  시선을 돌릴 줄 아는 영리함이라니, 역시 보통답군이란 생각마저 든다. 그의 최근 다른 작품을 보면서 다소 실망했던 마음을 이 책을 읽으며 다소 추스릴 수 있었는데, 그건 무엇보다 처음 데뷔작에서 보여주던 그의 재치와 통찰력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난 참신하고 새로운 시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새침하게 표현해내는 문장력, 소소한 일상에서도 거대한 그림을 볼 줄 아는 통찰력등 그를 처음 만났을때 열광하게 만들던 요소들을 다시 떠올리게 했으니 말이다.  촌철살인의 허를 찌르는 문장들을 만들어내는 재주도 여전하던데,  한동안 그의 책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일 일은 없을줄 알았던 내 예상이 보기좋게 빗나간 것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가끔씩 이렇게 기분 좋은 한방을 날리는 책을 만나는 것도 독서의 매력 아닌가 한다. 공감 가는 문장들을 꽤 건질 수 있는 책이긴 했으나,  일부 독자들에겐 지루하게 느껴질만한 구석이 많길래 추천작으로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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