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7
글로리아 네일러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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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터플레이스라고 하는 뉴욕 빈민촌에 사는 일곱 여성들의 이야기를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소설은 늙은 흑인인 매티 마이클이 브루스터플레이스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30년간 살아온 자기 집에서 늙어갈 줄 알았던 매티는 빈민촌으로 이사올 수밖엔 없던 자신의 삶을 되짚어본다. 늙은 부모의 외동딸이었던 그녀는 아버지 몰래 동네 바람둥이 청년과 시간을 보낸 뒤 임신하고 만다. 고이 딸을 시집보낼 줄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고, 독립심이 강한 매티는 미혼모의 길로 나서게 된다. 아들을 낳은 매티는 버질이라고 이름을 짓고 잘 키우겠다고 다짐 하나 젊은 흑인 여자가 홀로 아이를 키운다는건 쉽지 않은 일. 쥐가 들끓는 하숙방에선 아들을 재울 수 없다며 무작정 길로 나선 매티는 다행히도 미스 이바라는 사려 깊은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미스 이바의 집에서 그녀의 손녀 루시엘과 함께 아들을 키우게 된 매티는 비로서 안정을 찾는다. 정착한 그녀에게 이바 할머니는 애인을 만들라고 닥달하나, 아들을 키우는데 재미를 붙인 매티는 충고를 귓등으로 듣는다. 너무 사랑해도 자식을 망칠 뿐이라며, 아들의 뒷치닥거리로 평생을 보내고 싶냐던 이바의 말은 허무하게도 현실로 드러난다. 무책임한 개망나니로 성장한 버질은 얼떨결에 살인을 한 뒤 엄마는 나몰라라 한 채 도망가고, 매티는 평생 살아온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한편 50대 중반에도 자신에게 아직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매티의 친구 에타는 돈 많은 남자를 유혹해 편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매티의 권유로 교회에 가게된 그녀는 초청 목사를 보고 먹이감을 발견했다 생각한다. 목사를 유혹해 한 몫 잡으려는 에타의 계획은 그 목사 역시 그녀 못지 않는 꾼이라는 사실로 허사가 되어 버린다. 하긴 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겠는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답게 능수능란하게 에타를 농락한 목사는 새벽이 오기도 전에 그녀를 버려 버린다. 낙담해서 돌아오던 에타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매티를 보고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부잣집 딸네미인 대학원생 키스나와는 흑인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은 아가씨다. 빈민촌의 쪽방 아파트로 독립해 나온 그녀는 애인과 함께 흑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사회활동을 벌여 나간다. 딸이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엄마는 그런 딸이 이해되지 않는다. 사회의 정의를 부르짖는 딸에게 엄마는 흑인의 정의란 살아남는 것이라면서 현실을 일러주려 하지만 갈등은 쉬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딸 하나 바라보는 낙으로 미덥지 않은 남편과의 결혼을 버텨 나가던 루시엘은 딸이 사고로 죽자 정신을 놓아버린다. 인형을 좋아했던 코라리는 어른이 되자 아예 살아있는 인형(?)을 생산해내는 일에만 전념한다. 아버지가 다른 아기들을 꾸준히 낳던 그녀는 귀엽기만 하던 아가들이 결국 큰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낳기만 하고 키우는 것엔 관심이 없는 그녀는 이웃들의 눈총을 받지만 끄떡할 여인이 아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간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던 곳에서 쫓겨난 데레사와 로레인은 흘러흘러 브루스 플레이스에 정착하지만 그곳에서도 배척을 받자 발끈한다.

 

매티부터 에타, 키스나와, 루시엘, 그리고 코라리와 데레사, 로레인 여성 일곱명과 청일점인 알콜중독자 관리자까지...한 아파트에 세들어 사는 여덟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그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영향을 미치며 다독이고 힘이 되려 애 쓰는 일상들을 마치 시트콤처럼 그려낸 소설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 걸음일뿐인 흑인 여성들의 고단한 삶, 힘든 삶을 이겨나가게 하는 연대의식, 낙천주의등이 잘 나타나 있었는데, 일곱여자들의 각각의 삶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내던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매티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한편의 완성된 소설로 봐도 무리가 없었다. 미혼모로 아들을 낳게 되고, 그 아들을 힘들게 키워냈으나, 그렇게 키운 아들이 결국 개차반으로 성장하는 과정들을 어찌나 개연성있게 그려냈던지 다른 결말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질 정도였다. 수십년에 걸친 모자의 역사를 일필휘지로 설명해내는 저자의 필력, 감탄스러웠다. 저자인 글로리아 네일러가 흑인 페미니즘의 계보를 잇는 작가라고 하는데, 그런 시각 역시 이 책을 독특하게 하고 있었다. 흑인 페미니즘이라는 분류가 가능한가는 모르겠으나 나라마다 여성들의 처해진 위치와 역사에 따라 페미니즘의 성향도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난 흑인 페미니즘을 다른 여타의 나라의 것보다 좋아한다. 그들은 여성을 남성의 희생양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징징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생이 고달플 수도 있고, 마음 먹은 대로 안 될 수도 있으며, 때론 남이 벌여놓은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잘 됐건 못 됐건 간에 내 인생의 주체는 나라는 인식이 맘에 든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도 기 죽지 않고 당당한 것은 아마도 흑인 여성들의 특성이지 싶다. 그들의 경탄스러운 생명력과 무지스러움, 다른 모든 것에는 지혜로울 지라도 사랑에 관해서만은 어리석던 모습과 삶에 대한 낙관과 유대와 인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던 소설로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여성이라면 한번 읽어봄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단 전체적인 완성도는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나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힘이 막판에 가서 흐트러지는 점이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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