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 Inglourious Basterd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타란티노가 이제와서 나찌를 단죄하겠다는 나섰다. 이거 참 신기한 일이다. 그에게 역사 의식이 있다거나 심지어 역사에 관심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다. 딱 삼류 영화에 걸맞는 이야기만 조물락 거리는 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라고라? 타란티노가 2차대전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라... 아까운 배우 (브래드 피트) 하나 버리는게 아니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영화를 봤다. 물론 이 영화에 나오는 배우 하나가 칸느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린 상태, 그나마 버리는게 아닌가 걱정했다는 브래드 피트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었는가 하면 것도 아니었다. 하여 내가 왜 이 영화를 봤는지 나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서 내린 결론은 보길 잘 했다는 것이다. 재밌었기 때문이다. 타란티노식 단죄는 어찌나 단순하고 극명하던지... 평소에 나찌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 아라크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과 티벳과 기타등등 제노사이드가 벌어지는 현장의 이해관계를 복잡한 심정으로 헤아리고 있던 나로써는 하나도 골치 아플게 없는 그의 단순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세상에,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계명이 이처럼 속 시원한 것인지 잊고 있었다. 내 비록 점잖은 척하면서 ' 인간이 어찌 다른 인간을 단죄한단 말이요,' 라고 근엄을 떨고는 있었지만 마음 속에선 그런 놈들은 찢어 발겨 죽어도 싸지라는 분노가 잠재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들에게 남모를 인간성이 존재했을겨, 잘 살펴보면 이해할만한 구석이 있지 않겠남, 내진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다를거란 보장이 있을까 라는 생각때문에 머뭇댔던 내 나약함이 한방에 날라가는 듯했다. '네가 날 한대 때렸다 이거제? 그럼 너도 한대 맞아야 하지 않겄나?' 라는 지극히 단순한 그의 논리는 너무도 설득력 있어 반가울 지경이었다. 아. 이래선 안되는 건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우린 지성적인 현대인이고, 야만적인 상대를 만나 똑같이 야만적으로 나오면 지는 것이라고 누누히 들었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복수는 성에 차질 않았던 모양이다. 과연 그런 지성적이고 차분한 복수가 어떤 성과가 있겠는가 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한 몫 했을 테지만서도... 하여간에 연쇄 살인범이건 가정 파괴범이건 갱단 두목이건 나찌건 간에 못 된 놈들은 지구끝까지라도 가서 손을 봐주고 말겠다는 그의 신념에 통쾌함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뻔뻔한 신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의 단순 무식함에 미소 짓고 있는 내 자신을 계면쩍게 의식하면서...
 

 
<줄거리> 뭐가 좋은지 싱글 거리고 있는 이 사내가 바로 알도 레인 중령이다. 독일을 주름잡고 다니는 레지스탕스의 대장으로써, 우린 포로 따윈 잡지 않는다는 모토하에 보는 족족 나찌를 죽여대는 그들을 가리켜 독일군인은 < 막가파 녀석들--일명 바스터즈>라고  부른다. 미국 유대인인 그가 독일에서 설치게 된 데는 나찌 만행에 힘입은 바 컸다. 독일인들이 하는걸 보아하니 그들에겐 휴매니티( 인류애 )가 없다. 하니 우리도 그들을 인간 대접하지 말자는 단순 명쾌한 논리로 8명의 부하들과 함께 나찌군 처단에 나선 그는 과감한 살해방식으로 인해 곧 악명을 떨치게 된다. 킬링 나찌에 있어선 프로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들은 독일 내의 아마추어 킬러들을 흡수하면서 점차 조직으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최대한 많은 나찌를 죽여버리자는 그들의 사명감은 하늘을 찔러 죽음에 대한 공포심마저 없는 그들은 대범하기만 하다. 전시가 아니었다면 정신병원이나 감옥행을 예약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그들의 행보는 과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유대인 사냥꾼으로 악명높은 랜스 소령에게 가족들이 학살당한 과거를 지닌 쇼산나는 몇 년 뒤 파리의 극장 여주인으로 변장해 살고 있었다. 아름답고 냉정한 그녀의 인생은 독일 병사 프레드릭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시 한번 꼬이게 된다. 독일군의 전설적인 저격수인 프레드릭은 쇼산나의 매력에 반해 그녀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벌이고 다닌다. 그가 출연한 전쟁 영화의 개봉을 그녀의 영화관에서 하도록 주선해주는 프레드릭, 처음 그의 관심이 마뜩잖았던 그녀는 상영일에 많은 나찌 장교들이 모일거란 소식에 쾌재를 부른다. 평생 벼르고 있던 복수를 할 기회가 왔음을 직감한 그녀는 애인과 짜고 상영일에 영화관을 불살라 버리기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계획을 실천하기엔 너무 많은 변수들이 포진해 있기만 한데, 과연 연약한 그녀가 자신의 복수를 끝마칠 수 있을 것인가?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매력을 겸비한 독일의 여배우 브리짓 하버마스크는 2년전부터 연합군을 돕고 있는 첩자다. 독일 영화 개봉일에 히틀러를 비롯한 많은 나찌 고위급이 올거란 소식을 접한 브리짓은 영화관을 폭파하는데 일조하기로 한다. 바스터즈들과 접선을 위해 파리 근교의 지하 술집을 접선 장소로 택한 그녀는 마침 술집에 놀러온 독일 군인들로 인해 곤욕을 치른다. 바스터즈들의 어색한 독일어 억양으로 시작된 소란은 그녀의 재치있는 기지에도 보람없이 서로에게 총질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부상을 입은 채 혼자 살아남은 그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바스터즈의 레인 중령,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히틀러만은 잡아야 한다면서 부하들과 함께 이태리 카메라맨으로 변장해 영화관으로 향한다. 나찌의 눈치빠른 유대인 사냥꾼 랜스 대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드디어 복수를 위해 칼을 갈던 인물들과 나찌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결말을 위한 시나리오는 점점 긴장의 도를 더해 간다. 과연 유쾌하고 귀여운 바스터즈 일행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도 결국 랜스의 제물이 되고 마는 것일까?
 


 
영화를 본 사람은 안다. 이 장면을 빼놓고 이 영화를 논하면 심히 섭할 거란 사실을... 예술을 하고 있는 알도 중령과 이를 감상하고 있는 부하의 모습을 잡은 것인데, 다소 잔혹한 장면임에도 브래드 피트가 연기를 해서인지 카타르시적인 속 시원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영화야말로 브래드 피트에게 딱 적격의 역이라는 말이 있던데, 진짜로 그랬다. 그가 연기를 잘 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 영화에서만큼 인상적이었던건 못 본 것 같다. 감독의 의향을 정확히 꿰뚫는 두뇌에 배역을 마치 존재하는 사람인양 만들어 내는 상상력, 대사를 자유자재로 감칠맛나게 전달하는 표현력등 그의 연기를 보면서 왜 내노라 하는 감독들이 그를 캐스팅 하려 애 쓰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건 그가 잘생긴 배우여서만은 아니었다. 영화를 살리는 연기를 해내는 능력 있는 배우라서 그렇지... 대본이 어느정도 받쳐 주기만 한다면 영화가 사는건 문제도 아니겠다 싶어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되짚어 보니 과연 그가 등장한 장면들은 다 빛이 났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말이다. 영화속에서 빛이 나는 배우니, 뭐 사람들이 열광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앞으로도 그가 출연한 영화는 그를 보기 위해서라고 봐야 겠다 싶었다.
 


 
그리고 또 빼놓아선 안 될 인상적인 인물로 유대인 사냥꾼으로 나오는 랜다 대령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잔인하고 편집적이며 살인을 하면서도 친절한 미소를 흘려대는 이 남자가 어떤 장면에선 귀엽기 그지 없다는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지만 그는 정말로 그랬다. 한 인간 안에 존재하는 극과 극의 비정상적인 심리를 너무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걸 보면서 칸이 그에게 상을 준 것도 이해가 갔다. 여기에 브리짓을 연기하는 다이앤 크루거나 독일인을 잡는 독일군으로 나오는 틸 슈바이거의 연기도 멋졌으니, 독일 배우로써 나찌를 학살하는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썩 내켰을라나 궁금하긴 했지만, 뭐, 타란티노의 말대로 그들을 영화를 찍는걸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상관 있었을까 싶다.
 
한마디로 환타지로 보려하면 얼마든지 환타지로 봐도 되는 영화다. 내 평생을 살아오면서 바스터즈라는 레지스탕스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거기에 당시 미국 유대인들은 나찌의 만행이 사실일라 없다는 생각에 무시했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히틀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타 죽었을리 없으니 이 영화는 전적으로 허구다. 허구를 넘어서 환상 수준이다. 그런데 문젠 이 영화가 환상이라 한들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통괘했으니 말이다. 결국 패하긴 했으나 그전까진 인간 잔혹의 끝을 보여주던 나찌에게 누군가 복수를 했다는 설정만으로도 맘에 확 들었다. 내 정치관이 어떻건, 이 영화가 실제건 아니건간에 그냥 받는대로 주었을 뿐이라는, 그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라고 묻는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엔 없었다. 유쾌하고 건들거리는 유머에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가 볼만 했지만, 간간히 잔혹한 장면이 등장하니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주지하시길 바란다. 괜히 눈 버렸다고 하소연 하지 마시고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감독이 타란티노다. 뭘 기대하면 안 되는지 감 잡고 보시면 불평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는 변한 것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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