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 고라즈데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을 펼쳐드니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헌사가 쓰여져 있다. 세계 10대 지성답게 적확하고 매끄러운 글솜씨, 그가 이 책이 괜찮다고 칭찬을 한다. 그냥 하는 말 같지는 않아 믿음직스러웠다. 닉 혼비도 칭찬하고, 히친스까지 나서서 괜찮다고 했으니 이젠 읽어보기만 하면 되겠네 ...라는 마음으로 다음 장을 열었다. 실은 이 책을 읽는 것이 꽤나 망서려졌었다. 우습게도 난 전쟁에 관한 이야기 듣기를 싫어한다. 그들이 얼마나 인간답지 않은 일들을 행하고 있다고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고, 또 그들의 인간답지 않은 일들을 시시콜콜 듣는다는 것이 적잖이 고역이기 때문이다. 가슴을 후벼파는 이야기나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면서도 제발... 너무 잔인하거나 무섭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책이라면 그걸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일지도 몰랐지만서도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의 저자는 그걸 해냈다. 너무도 쉽게 해내서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저자의 명성이 어디서 왔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자극적인 묘사나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눈길을 끄는 작가가 아니었다. 단지 인간을 보다 더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따스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었지... 히친스가 칭찬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이 책안에 무엇을 담고 있을까 ? 

 보스니아 내전이 끝나갈 무렵, 세르비아계 무장군에 둘러싸인 무슬람 마을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의 제목인 고라즈데다. 유엔 평화 유지군에 의해 안전지대로 지정된 이후, 역설적이게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지 않은 지대가 되어버린 고라즈데, 봉쇄정책으로 사람들이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않은 상태를 2년간 겪고 있던 그곳에 기자신분으로 가게된 조 사커는 과연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생각과는 달리 그들은 잘 살고 있었다. 부족한 것 많고,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으며, 친척들과 지인들 대부분이 죽어나갔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삶을 살아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왜냐면 희망을 잃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미친는 것과 동일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를 경계했던 무슬림인들도 그의 진심을 알고는 경계를 풀게 된다. 외국 기자들에게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려 애를 쓰던 통역인 에딘, 입만 열었다 하면 팝송을 불러 제끼던 리키, 그들의 절망을 보여주지 못해 화가 난 다른 통역인, 미친 사람, 부족한 물자로 사람들을 먹이려 최선을 다하던 여자들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앞장 서 나선 사람들, 밀려드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다보니 잠을 잘 수도 없었다는 야전병 의사와 간호사들...그들의 겪은 전쟁은 이루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하지만 조 사커가 놀란 것은 그들이 대단히 침착하다는 것이었다. 한때 친구였던 사람들이 총구를 겨누고, 목을 따는 것을 지켜봐야 하고 ,인종 청소란 이름으로 강간을 자행하는걸 겪었음에도, 그럼에도 살아있기에 삶이 계속된다는걸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작은 것들을 소망하는 그들을 보면서 조 사커는 돕기 위해 나선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들의 봉쇄는 얼마후에 풀렸다고 한다. 

이 책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일상을 영위하려 애를 썼을 것이다. 비극을 뒤로 한채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겠지. 왜냐면 그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지나간 뒤라도 어찌 인간이 인간 아닌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상흔,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과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잘 그린 만화였다. 쉽게 읽히고 공감이 빠르다는 것이 장점. 무엇보다 감정이입이 어렵지 않아, 마치 내가 전쟁의 당사자인양 몰입이 되었다. 전쟁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고 싶으신분들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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