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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
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3월
평점 :
원 지아바오 중국 총리가 인도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한 발람은 인도의 기업 정신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그에게 편지를 쓴다. 인도 방갈로르의 잘 나가는 기업가라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발람, 세상은 부자와 빈자, 즉 배때기가 커다란 남자들과 배때기기라곤 없는 남자들 그렇게 두 계급으로 나뉘는데, 자신이 부자 편이라면서 그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발람. 그는 자신이 성공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인도에서 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팁을 얻게 될 수 있을거라 중국총리에게 너스레를 떤다. 아이에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아 그저 무니--아이란 뜻--라 불리웠던 소년, 카스트 천민출신의 인력거꾼 아들이며 간신히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던 하인 주제에 그는 어떻게 잘 나가는 기업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는 말한다 .그것은 바로 한 하루, 단 한 시간, 아니 단 일분이라도, 종으로 살지 않겠다는 자신의 결심때문이었다고 말이다. 자,그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하층민출신으로 태어난 발람은 어린 시절부터 인도의 고질적인 병폐들로 인해 고통받으며 자라게 된다. 악질적인 지주의 횡포, 카스트라는 비합리적인 제도가 뿜어내는 독기, 병원이건 학교건간에 사회 여기저기에 만연한 부패, 부자가 빈자를 종 취급하는 관습, 자라나는 아이를 생계전선에 뛰어 들게 하는 착취, 신부와 신부 가족을 울리는 지참금 제도등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는 온갖 제도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그는 어떻게 해서든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한다. 운전사가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에 속성으로 운전을 배운 그는 운좋게도 고향 출신 지주의 운전사가 된다. 고향에선 그가 정복을 입은 운전사가 되었다는 소식에 좋아하고, 그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면서 혈안이 된다. 지주의 큰 아들인 아쇽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엘리트로 시대가 변했으니 사람도 변해야 한다고 믿는 낭만주의자다. 그에 비해 그의 동생 뭉구스는 아무리 인터넷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하는 비열한 인간이다. 하인들이란 주기적으로 협박하고 짓밟아야 주인을 존경하는 법이라고 믿는 뭉구스는 하인을 인간적으로 대하려는 형을 못마땅해한다. 어느날 진창 술을 먹고 드라이브에 나섰던 야쇽과 그의 아내 핑키 마담은 사람을 치고 만다. 주인 내외의 실수를 무마해주려던 발람은 그들이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가자 정신이 번쩍 든다.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과 인도라는 거대한 불합리가 주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핑키마담이 미국으로 떠나자 야쇽은 무너지고 만다. 그런 그를 다독이던 발람은 점차 자신의 자유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야쇽을 살해한 발람은 그의 돈을 훔쳐 도주길에 오르게 되는데...
인도가 변하고 있단다. 정말 과연 그럴까? 바깥 세상이 그들의 불합리를 손가락질 하고 있을때, 그래도 정신세계는 너희들보다 우수하다면서, 까불지 말라고 대들던 인도, 너무도 지지리도 가난해 보기조차 역겨울때도, 그래도 마음만은 부자라면서 내면적인 평화와 행복을 강조하던 그들, 카스트제도라는 말도 안 되는 계급제도를 갖고 사람들이 비야낭거릴때 그건 우리들만의 질서라면서 참견하지 말 것을 주문하던 그들. 과연 그들은 변했을까? 이 책에 의하면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빈자나 하층민, 하인들등 밑바닥 인생들을 버러지처럼 취급하는걸 지극히 당연시하는 나라 인도는 아무리 너그럽게 봐준다고 해도 여전히 끔찍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것이 오래전부터 내려온 관습이라고 해도, 또 그것에 길들여진 인도인들이 그 상황에 저의기 만족하며 산다고 해도, 버러지 취급을 받는 하층민들이 워낙 무식해서 다른 환경을 갖다줘도 마찬가지일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눈살이 저절로 찌프려 지는 것은 그것이 인간적인 삶과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이며 평등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다른 삶을 상상할 수도 없는 인도인들을 보면 안스럽다.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한 존재라는걸 익히지 못한 사람들에게 평등이니 정의를 외쳐본 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소 귀에 경을 읽어도 그들보단 더 빠르게 알아들을 것이다. 그런 무기력감과 절망감에서 벗어나고자 행동에 나선 사람이 있으니 이 책의 주인공인 발람이다. 단지 인간적으로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상류층을 모시고 다니면서 점차 사회에 눈을 뜨게 된다. 발람에게 상류층이란 이런 자들이었다. 수십억을 뇌물로 바치고 오면서 동정 한 닢을 잃어버렸다고 하인을 닥달하고, 음주운전 사고로 사람을 치고는 하인에게 뒤집어 씌우며, 하인들의 가족들을 볼모삼아 협박을 일삼지 않나, 가난해서 무식한 사람들을 골리지 않나... 그에 비해 하층민은 또 어떤가? 그 모든 학대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에 안도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상류층의 위선과 횡포 못지 않게 하층민의 순종적인 태도에 진저리가 난 발람은 닭장안의 닭이 되지 않기 위해 난생처음 살인을 꾀하게 된다. 그것도 그나마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던 야쇽을 상대로... 그는 생각한다. 만약 정의대로 했다면 야쇽보단 뭉구스를 죽였어야 했다고... 하지만 그는 야쇽을 죽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야쇽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류층 사람들에게 하류층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문제되지 않듯이, 그에게도 상류층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받은대로 돌려준 그는 운전사를 하면서 주워 듣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바로 적절한 뇌물과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손쉽게 사업가로 자리잡게 된 그는 인도에서 배때기가 부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양심을 저버리고 살면 되는 것이라는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남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역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살인을 하고도 후회 하지 않는다는 주인공이라니... 자기가 무슨 뫼르소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사연을 듣고보니 그럴 듯도 했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인도가 당면한 커다란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살인이 가소로워 보일 정도로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부정의는 인간이 제정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으니 말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하인의 굴종보다는 살인자의 반항을 택한 주인공에게 지탄의 손가락질을 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 사회가 그렇게 돌아간다면 , 다른 수가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었다. 세상에...살인을 조장하는 사회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싶어 오싹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우리나라는 그런 인도와 얼마나 다를지 싶어 저절로 한숨이 쉬어진다. 그다지 많이 다르진 않으리라...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나라는 그것이 안 좋은 것들이라는 공감대만은 쉽게 조성된다는 것이겠지. 인간미가 사라진 사회, 꽉 막힌 사회, 공감대 형성이 안 되는 사회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이 골병들기 알맞은 구조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오래전에 읽은 존 쿳시의 <추락>이 생각났다. 이혼후 아무 생각없이 여인들을 농락하며 살던 남아공의 교수가 결국 성 스캔들로 대학에서 잘리게 된다. 그 소동속에서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던 그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딸이 흑인들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분노하는 그에게 딸은 오히려 이것이 남아공의 현실이라면서 그곳에서 살 생각이라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들의 사는 방식이라면 외지인인 백인이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정신이 번쩍 든 교수가 자신이 살았던 삶을 되돌이켜 보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각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모습이 이 책과 비슷했다. 물론 완성도면에서 보자면 <추락>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나았지만서도 말이다.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 개연성 높은 주인공의 캐릭터,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상황묘사, 군더더기 없는 설명으로도 이해가 팍팍 오게 하는 대가다운 솜씨등은 역시 노벨상 수상작답다는 생각이 들게하던 소설이었다. 그에 비한다면 이 소설은 어딘지 좀 부족해 보였다.무엇보다 일관성없이 횡설수설한 주인공의 성격은 끝까지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게 했다. 그의 개인적인 역사에 대해선 모르는게 없이 다 들었음에도 말이다. 주인공이 아니라 상황이 소설을 이끌고 가다보니 생긴 일이 아닌가 싶은데, 그러다보니 잡다한 상황들로 이야기가 장황해진다는 단점도 있었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확고하지 않다보니, 그에게 별로 끌리지 않더라는 점도 별로였고... 노벨상과 부커상의 차이일까? 하여튼 2008년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 실망이었다. 더불어 <한 밤 중의 아이들>로 부커상중의 부커상을 탄 살만 루시디가 얼마나 글을 영리하게 쓰는지도 새삼 깨달았으니...그 책이야말로 번역중이라는 말을 3 년 전쯤에 들었는데, 도무지 그 프로젝트는 어디로 간 것일지 궁금하다. 이런 책이 발 빠르게 나올 정도라면 그 책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어야 했는데 말이다. 살만 루시디가 노벨상을 받아야나 나올려나? 설마 노벨상 타길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한 생각에 오싹해졌다. 그가 노벨상을 탄다는건 정말로 요원한 일일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어째 리뷰가 산으로 올라간 느낌이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