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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체르 소나타 (보급판 문고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채윤 옮김 / 열매출판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크로이체르 소나타라는 낭만적인 곡을 제목으로 해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거장다운 톨스토이의 면모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으로, 도무지 이 양반은 어떤 사람이었을지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궁금해진다. 이런 통찰력에 심미안에 분석력에 인간을 꿰뚫은 직감을 지닌 분이 기독교적 공동체를 주장했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다. 사람들이 그를 따랐던 것도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만약 그가 오늘날 살아돌아왔다면, 그래서 여전히 똑같은 주장을 하고 다닌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바라볼까? 천년에 나올까 말까한 천재로? 아님 너무 똑똑했던 나머지 머리가 약간은 가신 분으로? 남의 삶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은 지녔지만 아내를 고르를 눈은 없었던 사람으로? 아니, 여자를 보는 눈은 있었지만, 자신의 아내감을 고를만한 결단력은 없었던 사람으로?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으니...그는 정말로 수수께끼보다 엄청난 비밀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알아내도 여전히 베일에 싸인듯, 비밀을 감추고 계시는 톨스토이.어쨋꺼나 내가 박수를 보내는 것은 잘된 책에 한정된 것이니, 천재적인 작가로, 그리고 완벽한 책을 쓰신 분으로 난 그를 영원히 존경하게 될 것같다. 특히나 이 책을 보고난 다음엔 말이다.
왜 사람은 결혼을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신랄하게 대꾸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왜 결혼을 하냐 비아냥대는 식으로 한마디씩 하긴 했으나 그것이 아무리 신랄하다고 한들 별로 와닿지 않았기에 별로 파급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왜 결혼을 햐냐,애들아...그냥 혼자 살아...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다름아닌 톨스토이다. 그리고 그가 말을 할때는 정말로 심각하다. 진실만을 것도 우리가 왠만해서는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진실만을 털어놓기 때문이다. 평범한 독자들이여... 두려워해야 할 지리라...톨스토이가 결혼에 대해 입을 열였으니 말이다. 낭만적인 사고로 무장한 분들은 아예 이 책을 들지 않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무서워,무서워 하면서 책을 내려 놓을지도 모른다. 냉정하고 신랄하며 빙퉁맞고, 무엇보다 자신이 결혼생활내내 괴로웠던 것들을 한치도 숨김없이 내뱉는데 그만 놀라고 말았다.이렇게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결혼 생활을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웠을지 갑자기 톨스토이의 아내가 가엾어 졌을 정도다. 그가 어떤 대접을 받았던지간에 절대로 무너지거나, 당하고 살지만은 않았을 톨스토이. 그가 말하는 결혼의 실체는 바로 이렇다.
귀족 가문이 자제로 흥청망청 바람둥이를 자처하며 살고 있던 주인공은 청순한 소녀를 만나 결혼을 한다. 소위 폭풍같은 사랑을 해서 맺게된 결혼, 아내의 가난이나 지위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 낳은 결과였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는 사랑을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서히 그 사랑도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해주진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연이은 출산과 멀어진 거리, 남편은 점점 아내가 경멸스러워지고, 결국 아내는 자신의 불만은 외간남자와 바람 피우는 것으로 해소하려한다. 이에 질투에 눈이 먼 남편은 아내를 죽이고 말고... 정상참작을 받아 풀러난 그는 기차에 탄 사람에게 제발, 결혼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건 인간이 절대 행복해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면서...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한 결혼 보고서다. 물론 이렇게 살면 절대로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아서...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인 여전히 이런 결혼 생활을 하며 살고 있을지, 안봐도 비디오란 생각에 씁쓸하기만 했다. 그러니 톨스토이의 책을 읽으신 분들은 들으라. 그의 말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시라. 요즘 같은 시대에 바람난 아내를 죽였다간, 자신의 죄책감은 물론이고 감옥에 가야 하니 말이다. 귀족도, 불륜도 사라진 이 시대에 정상참작이 내려지는 따위는 없을테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