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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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때 저자가 쓴 책이라고 한다. 우선 장점을 들자면 얇다. 문장이 참 훌륭하다. 내용은 프랑스 루이 16세 시절 베트남으로 선교 사업을 떠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갖은 고생끝에 프랑스에서 이역만리 베트남에 떨어져 드디어 그들의 선교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아 갖은 고생끝에 다들 죽거나 살해되거나 비참하게 자살하거나, 아름답게 자살하거나로 끝을 맺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역자는 21살의 나이에 썼다고 보기엔 문장에 대단하다고 극찬을 하고 있더라.  순결하고 우화적이고 담담하고, 깊고 넓은 침묵과 희열에 가까운 해맑은 슬픔과 적요함...등등의 단어로 도배를 하면서 넌지시 카뮈가 연상되더라는  말까지 하고 있던데, 그건 좀 지나친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아름다운 문체긴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얇은 것은 작가가 스물 한 살로 어린 나이로 삶의 경험의 깊이가 얇음을 반영하는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역자 생각대로 작가가 삶의 깊이를 무리없이 축약해낼만큼의 천재라서 아니라... 한마디로 저자가 나이가 어려 아직 모르거나 확신이 없기에 대충 얼버무릴 수 밖엔 없었던 부분을 가지고, 마치 나이든 현자들이 하는 것처럼 담담하게 생략한 것이라고 오해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역자가 칭찬하던 다음의 문장을 보자. 

 

"수사의 얼굴을 서서히 초췌해져갔다. 도미니트 수사의 뚱뚱하던 배가 들어갔고, 수염엔 이가 끓어서 면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카트린느 수녀는 아름다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꾸만 그녀의 몸으로 갔다. 그 노인이 말했었다. "각각의 존재는 하느님의 집이지요." 온갖 고난에 부대꼈지만 대책이 없었다. 푸른 대나무에서 떨어진 벌레들이 스물스물 기어다닌 곳에는 살이 썩었다. 그걸 치료하는 법을 배웠다. 새벽에 메콩강의 미지근한 물에 들어가 목욕을 했다. --127 

 

이 문장의 핵심은 "각각의 존재는 하느님의 집이지요" 다. 어쩜 그 말은 정말로 엄청난 깊이를 함축한 핵심적인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아귀에 안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전혀 이 문장과는 상관이 없는, 동 떨어진, 사오정의 말하는 듯한...하지만 사람들을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말일거야, 그렇지 않아? 각각의 존재는 하느님의 집이란 말 대단히 멋있잖아... 그런데 내가 묻고 싶은건 왜 이 말이 거기에 걸리냐는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문장속에서도 이런 말들이 간간히 눈에 뜨였다. 어떤 기분이었는가 하면, 용하다고 소문난 처녀 점쟁이를 만난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하지만 달리보면 누구에게나 의미없는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선교를 위해 멀리 베트남까지 온 선교사들 대부분은 다들 비참하게 죽는다. 단 한 쌍, 선교 사업의 본질을 잊고는 살림을 차린 수사와 수녀 커플만이 살아남는데, 작가는 그 둘을 죽이려 군인이 출동했으나 그들이 전혀 선교사같지 않았기에 죽이지 못하고 떠났음을 알려준다. 다시말해 그 둘은 다른 선교사들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육체를 서로 나누는 법이 없이 눈이 매섭고 말씨가 공격적인 남자들과 여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태연하고 창백하며, 벌거벗고, 땀과 정액에 축축히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 둘을 죽일 수 없었다고 말이다. 아마도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말에 무척이나 의미를 두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혹적이지 않는가? 종교라는 광기에 사로잡혀 이국만리까지 선교에 나선 사람들이 거반 다 죽었는데, 그 중 종교를 배신한 두 사람만이 살아남았다는 말이니 말이다. 정신보다 강한것은 육체다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던데, 아름다운가? 일리가 있는 통찰인가? maybe....Or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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