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 오래전에 한번쯤은 읽어봤을텐데도 기억이 전혀 남아있지 않는 작가가 내겐 파트릭 모디아노이다. 본 것은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고, 기억이 남지 않았다는 말은 별로 인상이 깊이 않았다는 뜻이고--난 한번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면 썩은 고기를 만난 하이에나처럼 달려든다. 그건 거의 본능이다.제어가 안 되는---아무리 어린 시절에 봤다고는 하나 언제 읽었건 인상이 깊지 않았다는건 지금 봐도 별로 인상에 안 남을 거란 의미고...이런 저런 추론의 연상에 의해서 늘 따돌림을 받던 작가가 바로 파트릭 모디아노였다. 책을 고르면서 한쪽에 몰려있는 그의 작품들을 지나면서 늘 찜찜해하던 기분을 이참에 일소해 보고자 그의 걸작이자 대표작이라는 이 책을 골랐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제목만으로도 벌써 군침이 돈다. 제목을 듣고 연상되는 정도로만 이 작가가 글을 써준다면 대박일텐데, 라는 심정으로 집어들었다. 또 솔직히 그렇지 않겠나 추측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한마디씩 했다면 뭔가 있을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래, 지금이야.난 이제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시기가 된 거라구!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상상하고 추측하며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좋지 않은 쪽으로 아니여서, 도무지 어떻게 이 책이 콩쿠른지 콩쿨인지 하는 상을 탔다냐, 심히 실망이었다. 

내용은 뭐, 자신을 찾아가는 한 기억상실자의 이야기다. 전쟁중에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그동안 흥신소에서 탐정으로 일했었다. 남의 기억과 추리와 궁금증을 풀어주며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사장이 은퇴를 하자 이제 자신의 일을 봐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한장의 부고를 시작으로 자신을 알만한 사람들을 수소문해 다니던 그는 점차 그가 함께 다니던 사람들의 일단을 찾아내게 도니다. 손에 잡힐 듯 그들의 이야기를 짜맞춰나가던 그는 결국 자신이 누군인지, 그와 함께 다디던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자신이 왜 기억이 상실된채 발견되게 된 것인지 알아내지를 못하는데... 자살했다는 옛애인과 페드로라는 남미인, 드니즈라는 모델과 프레디, 과연 그는 누구일까? 자신도 자신이 누군질 모르면서 그가 누군지 알겠냐고 찾아다니는 이 남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어린 아이의 슬픔의 덧없음과 같이 우리네 인생 또한 기억속에서 빨리 지워져 버린다는 철학을 담고 있는 무게 디립다 잡고 있는 소설이었다. 2차대전을 배경으로 전쟁을 피해 도망다니던 사람들이 뿔뿔히 흩어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한 채, 단지 한 사내만이 남아 그 과거를 추적한다. 왜냐면 그 사건이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정도가 아니라 단지 핵심만으로도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매력적인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어찌나 가볍게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던지, 더구나 얼마나 정확하게 문장들을 구사해내던지 문장 자체만으로 상을 주었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다만 , 이야기 자체가 그다지 재밌지 않았다.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 작은 단서, 실마리를 가지고 끈기 하나로 자신이 누군지 찾아가는 그의 이야기, 중반까지는 재밋었다. 신비롭고, 희한하고, 흥미롭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고... 하지만 그 추척이 결론은 없고 변죽만 울리는채 한없이 계속하려나보군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읽기가 싫어졌다. 말하자면 집중력을 잃어버렸다고나 할까? 더 이상 계속 봐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뭐, 어차리 그 고생을 하고도 결국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는거 아냐?  장난하나? 라는 생각... 자신이 누군지 몰라도 좋다. 그래도 뭔가 건질만한게 있지 않을까 싶어 끝까지 읽긴 했지만 역시나, 분위기만 디립다 더 잡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난 묻고 싶은게, 이런 작품을 보고 도무지 뭘 얻으란 것이냐? 문장 잘 쓴다는거? 기억은 덧없다는거, 인생 자체가 덧없다는 거? 사람은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거? 세상은 어차피 덧없는 거라는거? 전쟁통에는 잘 살기 어렵다는거?.......얻는거 없었다. 고로 나의 아심찬 파트릭 모디아노 프로젝트는 이 책 하나로 끝내기로 했으니, 어허라...아마도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읽었던게 맞지 싶다. 단지 기억에 남을 만치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 그런 것이다. 기억은 덧없는 것일지 모르나, 인상은 영원히 남는 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