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난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었다. 갇힌 공간에서 전해지던 그 뉴스의 비현실적인 느낌과 충격은 아마 내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기억되지 싶다. 처음엔 멍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이 전과는 똑같을 수 없다는 생각에 상실감이 밀려 들었다. 어떻게 세상이 같을 수 있을까? 앞으로 수십년간은 마치 사라지지 않는 화면의 배경 소음처럼 우리 주변에 계셔줄 줄 알았는데, 그 느물대시던 농담을 질릴때까지 들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그렇게 한순간에 끝나 버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가족이 아닌 내가 이럴진대 과연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지 싶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그분들은 어떻게 이 시련을 견뎌 나가고 계실까, 부디 강하시기만을 빌 뿐이다. 시간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여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암으로 잃은 C.S 루이스는 아내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라 절절맨다. 날카로운 지성과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였던 그는 슬픔을 분석해보기로 한다. 물론 그건 자신의 머리가 좋다는걸 자랑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었다. 그보단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과 슬픔을 어떻게 해서든 이해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기독교 신자임에도, 믿음이 아내 조이를 잃은 슬픔을 이해하고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걸 알게 된 그는 과연 어떻게 죽음과 이별을 받아 들여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그가 내뱉은 문장의 진실함과 정확함 때문이었다. 다음을 보자.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으나, 그 감정은 무서울 때와 흡사하다. 똑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 못하며, 입이 벌어진다. 나는 연신 침을 삼킨다. 어떤 때는 은근히 취하거나 뇌진탕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상과 나 사이에 뭔가 보이지 않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든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게다."

 

"만사가 재미없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집이 텅 빌때마다 무섭다. 사람들이 있어주되 저희들끼리만 이야기하고 나는 가만 내버려 두면 좋겠다."

 

어떻게 저런 느낌을 잡아내고 표현해 낼 수 있는지, 꼭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문장을 되풀이 해 읽어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본 사람들은 안다. 저 말이 얼마나 군더더기 없는 진실인가 하는 것을... 이 책의 전반적인 느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사별로 인한 슬픔을 헤아리는데 이보다 더 정확한 문장들은 본 적이 없다는 것, 위로가 됐다. 오래전에 이 책을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싶었다. 그랬더라면 나와 같은 슬픔을 겪는 것이 비단 나만이 아니란 사실에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적어도 흔하게 주어지지 않는 위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슬픔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하지만 그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서, 정작 위로가 필요할 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속에 남겨진다는 것은 대단히 비참한 일이다. 그럴땐 차라리 동병상련을 겪은 경험자의 충고가 더 낫다. 솔직히 말해 루이스의 충고라면 다른 말은 필요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그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던 것은 거짓된  감정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회피하지 않는 점이었다. 고통을 똑바로 직시하는 루이스를 보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그답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저자는 슬픔을 분석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분이셨지만, 그것보다 더 명징하게 가슴을 울려오던 것은  아내 조이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었다. 어떤 남편이 아내를 그렇게 잘 알고 사랑할 수 있겠느뇨. 최근에 읽은 해롤드 블름의 책을 보니 그는 루이스를 멍청한 작가로 이해하고 있더라. 물론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여인을 그토록이나 잘 헤아리던 사람을 보면서 그가 멍청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때론 세상을 다 이해한다해도 한 인간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이 사람 아니겠는가. 비록 커다란 세상을 파악하진 못했을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서만큼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기억해내던 그를 보면서 존경심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 둘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지... 지성적이고 선한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처럼 흐믓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우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에 분노하고  미쳐 날뛰며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실은 그렇게 사랑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한 사랑은 흔한 것이 아니고, 인생은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니까. 어쨌거나 만약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상실감에 고통스러운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 보심도 좋을 듯 싶다. 솔직하고 처절하게 고통을 받아들이는 저자의 모습에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살아갈 용기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버텨낼 용기, 견뎌낼 용기는 얻어가실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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