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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며 - 딸의 기나긴 작별 인사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유자화 옮김 / 부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큰일을 당한 사람이 "왜 나여야 하지?"라고 묻는 것에 논리를 따져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멀쩡한 정신으로 "왜 내가 아니지?"라고 물을 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물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우리 어머니가 파킨슨 병에 걸려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어머니를 대신해 "왜 우리 어머니지?"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어머니여야 했다. 마음 좋고, 관대하며, 유머 있고, 정도 많은 우리 어머니는 살면서 이미 크고 작은 고난을 수도 없이 겪었다. 하지만 질병이라는 재앙은, 그런 일을 당해 마땅한 사람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처럼 삶의 고난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닥친다.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는 임무가 어느 여름날 폭풍우처럼 느닷없이 내게 쏟아졌듯 말이다."---본문 6쪽에서.
우습게도 가장 감동을 받아 마땅한 이 문장에서부터 마음이 삐딱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작가 나이 육순에 사작된 엄마의 투병은 그녀의 일상을 철저하게 파괴해 버린다. 파킨스 병에 이은 치매는 엄마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아 아버지의 심장병과 자신의 발명이 이어지자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바를 몰라 전전긍긍한다. 그 막막하고 한없이 길기만 했던 7년간의 간병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책인데, 작가는 그 기간동안 왜 나여야 하지? 왜 엄마여야 하지?를 끊임없이 되뇌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내가 되묻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였다. " 왜 너는 아니여야 하는데?" 그럼 다른 질병이나 범죄의 피해등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런 일을 당해도 된다는 말이야 ? 그들은 그런 일을 당해도 될만큼 악하고, 모질며, 관대하지도 않았던데다, 유머도 없고, 정이 없기에 그런 질병에 걸렸다는거야? 고통이 심한 나머지 지극히 주관적인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걸 모르진 않았지만, 삐딱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는 없었다. 오, 난 이런 하소연을 굳이 책을 통해 읽을 필요는 없었다. 왜 나냐고? 그건 피할 길 없는 고통에 처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묻는 질문이다. 바보라도 그런 질문은 할 수 있다. 아니, 바보들이야말로 그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바보들의 징징대는 하소연을 들으려고 시간을 낭비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철저히 시간낭비였다.
처칠은 용기란 철저히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우아함을 잃지 않는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작가가 처한 상황이 심각하다는걸 모르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인 징징댐을 위해 책까지 써야 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더군다나 그녀는 그 경험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자신을 철저히 주관적으로만 인식한 나머지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만한 눈을 키우지도 못했고, 거기서 벗어날 만한 통찰력이나 지성,사랑도 부족했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그녀에겐 용기가 부족했다. 오로지 기록에 대한 집념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좋은 책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 왜 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그럴때 어떻게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나 견해니 말이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에 의하면 그럴 정도로 시야가 트인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그건 이 책의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처절한 경험을 통해 보다 성숙하고 선명한 지혜를 기대한 나로써는 실망이었다.
좋은 작가란 모름지기 자신의 고통안에서 침잠해 버려선 안 된다. 남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도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고, 그들의 고통도 당신의 고통 못지 않게 비참하단걸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걸 망각해 버린다면 그건 그냥 넋두리를 늘어놓은 일기에 불과하다. 작가로써 그런 시시콜콜한 일기를 들여다보는게 독자에게 엄청나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거라 생각했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독자들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적어도 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