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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아프가니스탄계 이민 2세였던 이 책의 저자 마비쉬 룩사나 칸은 항간에 떠도는 관타나모 수감 죄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원봉사를 신청한다. 비록 흐릿하긴 하나 같은 동포로써의 연대감에 로스쿨 졸업생으로써 타국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인간적인 연민 때문이었다. 정당한 재판을 보장 받기 위한 변호사들과의 면접시간에 통역을 하게 된 그녀는 악질적인 테러리스트들만 모았다는 관타나모의 명성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새 눈치챈다. 정작 만나본 죄수들은 아프간의 재건으로 돕고자 고국으로 달려온 의사에 문맹인 염소치기 청년, 몇 년 전부터 뇌졸증을 앓아 몸 놀림이 부자연스런 팔십의 노인, 영문도 모른채 아프간에서 끌려온 경찰 서장, 마찬가지로 죄명도 모른 채 잡혀 온 알라지자 방송국 기자등 알 카에다나 탈레반, 테러리스트나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민간인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저자 마비쉬 칸은 애초에 죄가 없는 그들이 끌려 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죄가 없다는 그들의 항변이 무참히 무시되는 것에, 기약없이 한없이 늘어나는 구속기간에, 인간성을 말살하는 악랄한 고문과 끔찍한 성 고문에, 가족들과 서신 왕래 조차 여의치 못한 것에, 인신구속의 부당성을 항의해봐도 끄떡 않는 재판부에, 자신이 사랑하는 고국 미국에선 현재 그 모든 일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만다. 죄수의 접견을 마치고 나오던 첫 날 '난 미국에 속고 있었어' 라고 멍하니 중얼거렸다는 그녀는 그 이후로 죄수들의 석방에 물심양면 나서게 된다. 그들에게 죄가 없다는 증거를 모으기 위해 아프간으로 날아간 그녀는 조국의 아름다움과 정겨움에 새삼 반하고 말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들을, 아버지를, 남편을 관타나모에 묶여 둔 채 불안에 떠는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관타나모의 죄수들이 실은 미국에 제시한 거액의 현상금을 타내기 위해 같은 동포들이 저지른 허위 밀고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그 사실을 밝혀 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 명백한 사실마저도 미국 재판부에 먹히지 않다는 것에 놀라고 만다. 미국 재판정 입장에선 무슬림은 다 무자비한 테러리스트 같아 보였고, 그들 가운데 하얀 양을 구별해 내려는 의지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무고한 이들을 위해, 갑작스럽게 닥친 모진 역경을 인내심과 의지를 가지고 꿋꿋히 견디는 죄수들을 위해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한 로스쿨 졸업생이 관타나모 죄수들의 통역을 도와 주면서 겪은 일들을 쓴 것으로 읽기 쉽게 쓴 점이 장점이다. 하지만 저자가 나이가 어린 탓인지 보이는 것 이상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없던 점이 아쉬었다. 만약 베테랑 기자가 썼다면 탁월한 글이 나오기 어렵지 않는 소재였을텐데, 평면적인 서술에 그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관타나모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선 방송매체에서 익히 들었던 터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음에도, 그들의 실상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벌이는 무자비한 폭력과 만행의 정도를 가늠하는 것이 언제나 버거운 탓이었다. 왜 인간은 타인에게 친절하기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역사가 진행되어 감에도 인간의 잔혹함과 무지는 달라지는게 없다든 사실에, 유대인의 홀로코스트나 일본인의 난징 학살이 관타나모의 죄수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인간이란 종족에게 새삼 낙담이 되었다. 보다 문명화되고 진화된 인간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꿈꾼다는 것이 어쩜 우리들의 이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프간 죄수들이 무척 안 됐으면서도, 한편으론 우리 신세가 아프간과 같지 않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러웠다. 만약 우리나라가 아프간과 같이 무기력한 나라였다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았을테니 말이다. 죄수들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 고국을 미국 못지 않게 증오스러워 하던 모습들이 이해 되는 순간이었다. 자기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는 부모처럼, 자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고 팔아먹는 정부는 욕을 먹어도 싸다.
오래 전 미국에 <60분>이란 시사 프로에서 한국 주둔 전 미국 사령관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근무한 느낌은 어땠냐고 여자 앵커가 묻자 그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흑흑 대더니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 말도 마라, 너무 힘들했다. 그곳의 정세가 얼마나 위험하고 일촉즉발인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라고...하도 어이가 없어서 --당시는 우리나라가 비교적 평화로울 시기였다.---동생과 나는 크게 웃어 버렸다. 동생과 나는 " 와 ,우리가 그렇게 위험한 나라에 살고 있었군요, 왜 우린 그걸 여태까지 몰랐을까요? " 라며 서로를 위로해 주었다. 남자는 평생 세 번 만 울어야 한다더니 정말 눈물이 흔한 남자의 눈물은 가관이더라. 하지만 내가 느꼈던 가소로움은 곧바로 다른 걱정으로 향했다. 그가 꼴갑을 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만 그걸 시청한 미국인들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는...그는 너무 진심같아 보였으니 말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는 지금, 과연 미국인들에게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다르다는걸 구별할 능력이 있겠는가 싶은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우리는 아프간 인들과 마찬가지로 "All the same"이 아닐런지?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죄수들의 기막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역사가 증명하건데 , 거대한 힘을 가진 자가 그 힘을 제대로 쓰는 법은 대체로 없었나니...우린 그저 그 힘의 희생자가 되는 일은 없게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