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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약 20년전 우리 모두를 놀라게 만든 결혼을 해치운 후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불행한 생활을 하는 선배가 하나 있다. 얼마 전 그녀가 내게 이런 말을 들려 주었다. 내용인즉슨, 만약 그때 누군가 자신을 붙들고 인생에서 반드시 결혼이란걸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 없이 사는 것도 괜찮다고 다독여 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저 흘리는 말이라도 인생에 옵션이 있다는걸 떠올리게 해준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자신의 삶이 달라졌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땐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울먹이는 소리에 난 한동안 아무런 대꾸도 해 줄 수 없었다. 하긴 무지해서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는 회한에 어떤 위로가 가능하겠는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때 그걸 알았더라면...라는 말로 후회를 하며 자책을 한들 고통이 줄어들린 없으니 말이다.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난 모든 걸 참아낼 수 있다는 자만이 합쳐진 무지가 때론 얼마나 파괴적인지 젊은 사람들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다. 젊은 시절의 순진함이란 정녕 그런 것이니까. 그래서, 이 책 속에 언니가 젊은 시절 듣고 싶어하던 그 말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는 한편으로 반갑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20년전 이 책이 나왔더라면 과연 언니의 삶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하는...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라는 제목의 이 책은 여자는 혼자여도 괜찮은 족속이라는걸 여러 사례를 통해 단정적으로 확신하며 들려 주고 있는 책이다. 미술관에 혼자인 여자가 많다는 것은 메타포에 불과할 뿐, 실증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책은 아니니 오핸 마시길 바란다. 골자만 뽑아내면 여자들이 혼자라는 현실이 두려운 나머지 자신의 삶을 혼란속에 빠트리는 것이야말로 길게 보면 한없이 어리석은 행동이라는것을 말하고 있던 책이니 말이다. 책을 읽어 내려 가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드디어 이런 말을 당당하게 선언하는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착찹했다. 그런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해 고통속에 사는 언니같은 사람들이 생각나서도 그랬지만, 또 그것을 알려준다해도 머리속에 저장될리 없는 젊은 처자들 때문에도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혼자란 비루함과 동일어라는 관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그들에게 쉬운 일이 아닐터였다. 무엇보다 고독이라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은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핵심이라는 말이 얼마나 먹혀 들어갈지 의문이었다.
두 번의 고통스런 이혼을 거친 뒤 심리 치료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저자는 많은 여성 상담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여자들이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여자들이 혼자라는 사실을 너무도 불편하게 여긴 나머지 자신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충동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는걸 직접 목격하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 해로운 관계를 끊지 못하고, 연인이 떠나면 곧바로 새로운 연인 품으로 뛰어든다거나, 24시간 내내 인터넷에 접속되지 않으면 불안감에 떤다든지, 고통의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해 음식,섹스,술,마약에 탐닉하게 된다는걸 알게된 저자는 과연 고독이라는 것이 그렇게 껴안기 힘든 고통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왜 여자들은 그렇게 혼자인 것을 두려워 할까? 고개를 갸웃대던 저자는 그것이 쓸데없는 불필요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혼자라는 것도 잘 활용하면 군더더기 없는 멋진 삶이 펼쳐지는데도, 단지 그것을 실패나 소외,고립, 고착으로만 생각하고는 자신 앞에 펼쳐진 다양한 옵션을 헤아려보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발견을 통해 여자들이 안스러워진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들려준다. 이봐. 불행한 둘보다는 행복한 하나가 더 나을 수도 있다니까! 라고...더 나아가 만일 우리가 고독을 껴안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불행한 삶은 반복될 것이란 경고와 파트너가 있든 없든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공허가 당신의 발목을 잡을 거란 사실도 들려주고 있었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이 말이 옳다는걸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지 문제라면 가슴까지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일뿐...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자신과 친해지기가 정말로 힘든 정신병자나, 자신에게 좋은 친구가 될만한 자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멍청하고 지루한 사람이 아니라면 전적으로 옳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친해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실 자신을 알아가는 것만큼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드는 과정도 없으니 말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가장 모르고 있는 사람이 내 자신 아니겠는가? 젊은 시절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20대의 여성들에게는 그다지 감정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거란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만은 악착같이 피하면서, 자신을 남에게 맡겨도 행복이 저절로 찾아올거라 철썩같이 믿고 사는 시기가 대충 그때쯤이니까. 나도 그래봤기에 잘 안다. 하지만 언젠가는 자신과 대면해야만 하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니, 여자라면 미래나 혹은 현재를 위해서라도 한번쯤 이런 책을 읽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다양한 타인의 삶의 실패와 성공을 들여다보면서 뭔가 생각할 거리를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