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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어둠 - 우울증에 대한 회고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임옥희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카뮈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자살 충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반 고흐는 "앞날의 예감도 어둡다.나는 미래를 행복한 빛 속에서 보는 것이 전혀 되질 않는다" 라고 동생에게 썼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보,내가 미쳐가고 있다는걸 느낍니다. 나는 내가 또다시 그러한 지독한 시간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다시 건강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유서를 남기고 주머니에 잔뜩 돌맹이를 쑤셔 넣은 채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 남았던 프리모 레비는 아파트에서 몸을 날려 그를 경외하던 모두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그리고 로맹 가리...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아들의 대학 입학을 기다렸던 그는 " 나는 나를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말을 남긴 채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평범한 일상을 소란없이 채워가며 하루 하루를 살아 나간다.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일상이란 습관에서 벗어나 자기 살해라는 끔찍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일까? 과연 그들은 우리의 통념대로 무책임하고, 나약하며,생명을 존중하지 않고,성격 파탄에,자기 생각만 하는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애정 결핍인 사람들일까? 여기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나선 한 작가가 있다.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소피의 선택>의 작가 윌리언 스타이런은 1985년 육순의 나이로 우울증을 앓게 되면서 우울증의 격심한 고통이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우울함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통제가 불가능한 고통과 마주한 그는 비로소 자살자의 심리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정당방위일수도 있겠다는걸 깨닫는다.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그도 딱히 꼬집어 설명할 수 없던 정신적인 고통,꼼짝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은 질식 상태,불면증과 함께 찾아오는 극도의 피곤함,무각감과 자존감의 상실,정신이 와해되는 듯한 좌절감과 쉴 새 없이 밀어 닥치는 고통에 압사될 듯한 두려움등...그들이 자살을 하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게 없었다. 그 고통이 쉽사리 물러나지도, 치유되지도 않을 거라는 절망감에 휩싸인 그는 결국 자살 충동과 싸우던 내면의 전쟁을 그만두기로 한다. 자살을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 마치 총살대 앞에 서 있는 사람처럼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다.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치닫고 있었다.중증의 우울증 상태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제2의 자아가 따라다니는 것 같다고 말한다.제2의 자아는 일종의 유령같은 관찰자로서,본래 자아가 경험하는 치매 상태가 전혀 없는 냉정한 호기심을 갖고,그가 다가오는 재앙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혹은 어떻게 무너지고 마는지를 관찰한다. 나는 자기 살해자인 동시에 희생자였으며,고독한 배우인 동시에 외로운 관객이었다."
인간의 목숨은 하나뿐이다. 삶과 죽음을 갈라 놓는 다리를 스스로 건너겠다고 마음 먹는 사람도 그걸 모를 리 없다. 여기서 우린 이런걸 한번 생각해 봤음 한다.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사람들은 암에 걸리고, 실직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도 겪으며,실망도 느끼고,끔찍한 일도 당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자살을 하는 건 아니다.그렇다면 왜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중에는 유독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 그건 그만큼 우울증의 고통이 참을 수 없을만치 지독하단 반증이 아닐까?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되돌아온 스타이런은 "폭풍우를 견디고 살아 남는다면 광포한 폭풍우는 언제나 약화되면서 사라진다" 는 깨달음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격리와 안정,적절한 약물 치료를 통해 증세가 호전되자 단박에 자기 파괴의 환상이 사라진걸 보고 그 역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우울증의 고통이 아니었다면 자살을 택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그는 그러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우울증에 대해 인식이 재고 되기를 주문한다.비난이나 비판,섣부른 판단 대신 정확한 이해와 사랑,그리고 격려만이 또다른 자살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하면서.물론 환자 자신의 도움을 구하려는 태도와 인내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건강이 회복되고 다시 평정과 기쁨을 즐길 수 있게 된 그는 그것이야말로 절망을 넘어서 절망을 견딘 자들에게 돌아가는 충분한 보상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그래서 우리 빠져 나왔도다, 다시 한번 별을 보게 되었노라."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