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케인 - Citizen Kan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는 한 재벌의 죽음을 알리면서 시작한다. 찰스 케인,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남들이 누려보지 못한 삶을 살았던 그가 노환으로 사망한 것이다. 부고 기사를 쓰기 위해 모인 기자들은 남다른 삶을 살았던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삶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 기이한 인물이었던 만큼 그에 걸맞는 특별한 기사를 쓰고 싶은 담당 기자는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었다는 <로즈버드>란 말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과거에 케인과 연분이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말의 의미를 캐던 기자는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저으기 실망한다. 케인의 전처와 매니저, 친구,그리고 정적을 차례로 만나보면서 재벌에 얽힌 흥미진진한 일화를 기대했던 기자는 오히려 외롭게 죽어갈 수 밖엔 없었던 재벌의 사연만이 드러나자 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짠해지는데...

 
만약 당신의 배우자가 비열하고, 자기 밖엔 모르는데다, 냄새 나고, 추잡하며, 착하거나 선량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해보자.그런 사람을 견뎌내고 결혼 생활을 지속해 나가려면 상대에게 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할까? 대략 50억이 마지노선이라고 한다. 다르게 말해보면 인간의 품성값이 50억은 된다는 뜻이다.

여기 이 영화의 주인공 케인은 그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이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만한 재벌이다. 그런데도 그의 주변엔 사람이 남아 나질 않는다. 덕분에 그는 하인을 부르면 메아리가 울려오는 넓고 넓은 저택에서 홀로 쓸쓸히 외롭게 죽어간다. 그의 친구도, 전처도, 매니저도, 그의 일생을 추적하던 기자도 그런 그가 한없이 안스럽지만, 그렇다고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는 없었다. 

돈잔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호화롭기 그지없는 성을 지어 살고 있는 케인,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거대한 무덤이 되버린 저택에서의 그의 삶은 가히 충격적으로 비춰졌다. 돈만 있으면 행복이건 우정이건 사랑이건 다 살 수 있을거란 단순한 믿음이 환상에 불과하다는걸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오히려 돈이 인간성을, 성품을  보충해주진 못한다는걸 설득력있게 증명하고 있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 외로워 소리를 질러도 응대해 줄 사람 하나 없이 적막하기만 한데... 그런 삶을 그 누가 행복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케인은 현대와 같은 금전 만능주의 세태에서도 돈으로 사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전세계에서 수집해 온 온갖 유물과 보물로 자신의 저택을 채워 놓았지만 정작 인간의 온기는 채울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인간적인 유대가 박탈된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가를 보여주고 있었던 찰스 케인, 혹시 이 세상에 돈으로 사지 못하는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한번 이 영화를 보시길 권한다. 너무도 쉽게 생각이 바뀌실 테니 말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걸작이라는 명성이 헛된지 않던 영화였다.정녕 이런걸 두고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으니 말이다.오히려 지금의 영화들은 이 영화에 비하면 퇴보했다고 보여질 정도였다. 보기 전엔 67년전에 찍은 고전이라 다소 촌스럽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필요없는 기우였다. 오히려 현재 영화를 찍어 내는 날고 긴다는 감독들중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실은 이런 영화가 만들어 졌다는 사실조차 믿겨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탁월했다.영리한 대본에,완벽한 연기,군더더기 없는 카메라 워크, 설득력있는 심리묘사, 등장인물들의 뚜렷한 개성,상황을 드라마틱하게 강조하던 인상적인 조명 처리,이야기를 풀어가는 짜임새 있는 구조, 유치하지 않는 현실성있는 줄거리,모순 없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재치 있는 대사등, 한 천재의 번득이는 창의력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극치를 보는 듯했다. 시민 케인에 대한 찬사는 결코 호들갑이 아니었으니,탁월한 Masterpiece라는 평에 조금의 이의도 제기할 수 없었다.특히 오손 웰스의 천재성이라니...너무 잘 만들어서 저주 받았다는 말이 그저 영화광들의 호들갑인줄 생각했는데, 세상에, 정말 그렇더라.도무지 어떤 인간이길래 저런 영화를 25살에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일지, 오손 웰스에 대한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뭐, 장점들만 떠든다 해도 일박 이일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으니,다른 건 제쳐 두고 내가 이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본 주인공의 심리를 분석해보기로 하겠다. 이 영화속의 주인공의 심리에 대해 생각나는데로 적어 보자면...

 1.우울증에 대해--주인공 케인은 무엇이건 사들여 집안을 꽉꽉 채운다.그리고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돈이 많으니 사고 싶은걸 사는게 뭐 어떻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필요없는 물건을 과도하게 사들이는 것은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세이며 물건을 버리진 않는건 심리적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자와는 달리 남자들의 우울증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나는 증상이라 한다면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사들이고 보는 것이다.그러니 만약 배우자가 정신없이 사들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면 돈을 낭비한다고 바가지를 긁기 전에 우울증에 걸린게 아닌가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다.엄청난 갑부들이 갑자기 자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그들은 모두 죽기 전에 한동안 엄청나게 사들이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사람들은 그들이 돈 자랑이나 투자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알고보면 도와 달라는 비명 소리였다는 것을 그 누가 그걸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인간의 심리라는 것은 그렇게 겉보기와는 다를때가 많다.

 

2.경계성 인격 장애에 대해--자칭 "보통 사람 ,시민 케인" 이라고 자신을 홍보하고 다녔던 그, 하지만 재밌게도 보통 사람일뿐이라는 그의 주변엔 인간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를 겪어 보지 않는 사람은 그게 선뜻 이해되지 않을지 모르겠는데, 친구들이건 애인이건 아내이건간에 그 넘쳐나는 돈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입고 도망가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경계성 인격 장애>의 전형으로 보여지던 케인, 전형적인 증상을 보자면 자신만을 사랑하는 성향에 사람들이 늘 자신을 버리고 떠난다고 불평한다는 것이다.남을 사랑하는 능력이 아예 없다고 보면 되는 사람들로, 그 남이란 리스트에는  배우자,친구,심지어는 자식까지 포함되니 참,기막힐 노릇이 아닐까 한다. 심리학계에선 자라는 동안의 어떤 트라우마나 유전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는데, 이 영화속 주인공의 경우는 어린 시절 엄마와 일찍 헤어져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했던 것이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그가 죽어가면서 외친 <로즈버드>의 의미는 이와 일맥상통한다.그가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니까.-- 

안타까운 것은 현재까진 이런 사람들을 고칠 약이 없다는 점이다. 왜냐면 그건 성격으로 형성된 것이지 정신병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안 됐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그들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영화속에서  케인의 두번째 처인 수지가 자살을 시도 하고, 불평을 해대다, 결국 살기 위해 떠나는 장면을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란다.이는 경계성 인격 장애자와 사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전형적인 전개 과정이니 말이다.그러니 당신의 딸이나 아들이 배우자감을 데리고 왔다면 다른건 차지하고서라도 혹 그들이 경계성 인격 장애가 아닌가 정도는 살펴 보시는게 좋을 것이다.최소한  자녀가 자살하는 모습만은 보고 싶지 않으실테니...

좋은 영화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생각들과 풍부한 영감을 주고, 색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보게 하며,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튀우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영화 ,수작인 영화였다. 영화사에 길이 빛날 <시민 케인> ,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은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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