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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아버지의 자살 이후 엄마와 삐걱대며 살아온 리에는 6개월간 동거한 남자친구마저 홀연히 집을 나가자 마음이 상해 버린다. 심난한 마음에 직장까지 때려친 그녀는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일단 성인이니 자신의 의식주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이유중 하나였으나 그것보다는 왜 좋은 직장은 때려 친거냐는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직장을 알아보던 그녀는 우연히 꿀벌의 집이라는 곳에서 입주 직원을 구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외딴 산골이면 어때? 내가 모르는 분야에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지원서를 낸 그녀는 마침내 낯선 산골 역에 내리게 된다. 양봉업자인 여사장 기세의 안내로 일터를 돌아본 리에는 종종 곰이 출몰한다는 말에 기겁을 하지만 은근히 양봉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드디어 "꿀벌의 집" 정식 직원이 된 리에는 서서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알아간다. 말수가 적은 푹주족으로 성실하기 그지없는 겐타, 거식증으로 사경을 헤매던 소녀였으나 꿀벌의 집에 와서 건강해 졌다는 아케미, 한때 교사였지만 10년전부터 양봉업을 하고 있는 사장 기세, 친절한 마을 사람들과 드라마틱하게 등장한 기세의 혼혈아들 조지까지....도쿄의 직장 생활에선 느끼지 못한 푸근한 정에 끌린 리에는 점차 마음을 열고 사람들에게 다가서게 된다. 물론 그것은 꿀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칙칙한 파리 정도로 여겼던 꿀벌이 찬란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찬사를 보낼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꿀벌집에서의 적응과는 별개로 엄마와의 사이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하다. 외로움에 의한 알콜중독과 위암으로 엄마가 결국 입원하고 말자, 리에는 하는 수없이 엄마를 꿀벌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엄마가 잘 적응하자 그녀는 놀라고 마는데...
고통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있으랴? 만은 이 소설의 주인공 리에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처녀다. 자살한 아버지와 만났다하면 싸우기만 하는 엄마, 한심한 남자친구에다 맘에 안 드는 직장생활... 어디에서도 위안을 찾지 못한 리에가 도피하다시피 도착한 꿀벌의 집에서 생각지도 못한 치유를 얻게 되는 모습들이 참 듬직해 보였다. 넉넉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서 서서히 자신의 마음의 고통을 잊어가던 그녀가 얼마나 대견하던지... 리에 자신이 너그러워지자, 늘 어긋나기만 했던 엄마와의 관계가 천천히 회복되더라는 것은 어쩜 당연한 수순이었을른지도 모른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속에서 타인을 이용하고 착취하는게 아니라 공생의 관계라는걸 배우는 리에,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꿀벌을 돌보는 리에는 보면서 흐믓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욕심없이 사는 듯 한적한 시골 사람들의 정취가 살아있던 소설로 산골의 정경 묘사가 마치 진짜 꽃 향기나 꿀벌 내음을 풍겨올 듯 생생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읽다보니 오래전 본 일본 영화< 추억은 방울방울 > (おもひでぽろぽろ: Memories Of Teardrops,1991년도작) 이 떠오른다. 이 참에 집안 어딘가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DVD를 꺼내 추억을 한번 되새겨 볼까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