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여 바다여 1
아이리스 머독 지음, 안정효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유명 배우겸 연출가였던 찰스 애로우비는 은퇴를 하고 고즈넉한 바닷가에 오두막을 사서 이사를 온다. 수영과 요리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자서전을 집필하기로 결정하고는 과거를 회상한다. 그가 바닷가에 은둔했다는 소식에 한때 그의 연인이었던 여자들이 불쑥 찾아오기 시작한다. 평생 여자를 유혹했다 버리고의 반복을 되풀이 한 찰스의 과거가 이제 그의 발목을 잡고만 것이다. 현재 길버트와  살림을 차린 리지는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면서 언제라도 불러달라고 매달린다. 난생 처음 가정다운 보금자리를 꾸민 동성애자 길버트는 그것이 거짓된 것일지라도 망가뜨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찰스를 위해 남편을 버렸던 로시나는 그가 딴 여자와 사는건 볼 수 없다면서 복수의 칼날을 간다. 찰스가 아내를 유혹해 준 것을 마치 그가 자신에게 대단한 친절을 베푼 것인양 굴던 페리 역시 그를 찾아온다. 과거의 인연의 망령들이 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찰스는 길거리에서 자신의 첫사랑 하틀리를  보게 된다. 한때 미모와 순결을 자랑했던 그녀는 이제 육십을 넘긴 초로의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난 노인네가 되 있었다. 그녀 때문에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던 찰스하틀리에게 남편이 있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따라다닌다. 하틀리 부부의 대화를 엿들은 찰스는 그녀가 불행한 결혼을 하고 있다고 짐작하고 하틀리를 구출하기로 마음 먹는다.  타인의 결혼 생활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주변 사람들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틀리를  꼬여내어 집에 가둔 찰리, 하틀리가 집에 보내 달라고 비명을 질러대도 마이동풍이다. 그의 이상한 행동을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고 있던 중, 찰스의 사촌인 제임스가 찾아온다. 강경하던 찰스도 군장성 출신인 제임스의 권유에 하는 수 없이 하틀리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그 후에도 그는 그녀에 대한 집착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데...

 

살면서 혹 이런 사람을 만나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내가 돈까스가 먹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것보다 우동이 낫다면서 아예 우동을 시켜 준다든지, 예의상 핸드폰이 멋지군요? 했더니 죄송하지만 이건 줄 수가 없는데요? 라고 대꾸한다든지, 더 나아가 난 전혀 좋아하지 않는데도--실은 이상한 사람 아닌가 경계하고 있는 중인데도--엄청 좋아한다고 철썩같이 믿는다든지, 함께 보낼 시간을  많이 못 내줘서 -- 실은 난 같이 있을 생각이 없는데!---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든가, 솔직하게 난 당신이 별로다라고 말했더니 농담하는줄 안다든지...한마디로 내가 무슨 말을 하던지 간에 자신이 듣고 싶을 말로 해석해 듣는 사람, 그것이 얼마나 상대에게 복창 터지는 일인지도 모르는 사람,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찰스 애로우비가 그런 작자이다. 이기주의를 넘어서 경계성 인격 장애나 나르시스트가 아닐까 추측이 되는 찰리는 기계적으로 여자를 유혹했다 버리는 일을 되풀이 하면서도 죄책감 하나 없던 인물이다. 평생 권력과 통제만을 추구하며 여우처럼 밉살맞게 살아왔던 그는 쓸쓸히 은퇴생활로 접어들려다 우연히 첫사랑 하틀리를 만나면서 집착과 통제의 화신으로 거듭나게 된다. 자신을 버린 유일한 여자였던 하틀리를 만난 그는 그녀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틀리가 뭐라 하건간에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대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찰리, 그 덕분에 이 책속엔 등장인물 간에 진정한 대화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마치 상대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 제멋대로 해석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어리둥절해하는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행동들속에서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당사자를 뺀 독자들뿐이지 않을까 싶었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채 하틀리를 구속하는 찰스와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하틀리, 그렇게 레일에서 벗어난 기차처럼 파멸을 향해 내달리는 찰스제임스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제지당하게 되지만, 과연 그것이 그에게 평생에 한번쯤 정신을 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아이리스 머독이 그렇게도 바라고 바랬다던 부커상을 그녀에게 안겨다준 작품이다.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 데뷔작 <그물을 헤치고>보다는 별로이지 않는가 싶다. 연극처럼 쉴새없이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냄에도 흐트러지지않는 탄탄한 구성에 개연성 높은 심리묘사, 현실감 있는 등장인물들과 마치 실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듯한 현실성,그리고 동양 불교의 신비주의와 서양의 철학등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만한 요소들이 이 소설에서도 여전했지만, 마무리가 약간 어색하지 않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비유를 하자면 상상력이 바닥나는 바람에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할지 감을 못잡은 상태에서 억지로 쓴 듯한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이 작품에 부커상을 주었다니, 아마도 그녀가 이미 쌓아올린 업적을 감안해 받게 된 상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무뚝뚝한 머독씨. 남자들의 심리를 너무 잘 파악하는 그 통찰력만은 알아줘야 할 것 같다. 우스운 것은 요리에 대한 장면이 유난히 많이 나오길래 머독의 여성적인 면이 드러난 것이겠거니 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머독의 남편 공이라는 점이었다. 이래서 추측은 함부로 해선 안 된다니까. 참, 아이리스 머독의 책은 일단 이 소설을 끝으로 일단락 짓기로 했다. 특이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세권째를 연달아 읽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작가는 못되는가 보다. 하긴 어떤 작가가 그렇게 매력적이겠는가 만은, 어쨌거나 좀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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