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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차대전이 끝난 영국, 막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서른 둘의 줄리엣은 영국령 건지섬에서 보내온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 찰스 램에게 반했다는 도시라는 사내가 보낸 그 편지를 통해, 줄리엣은 건지섬의 북클럽이라는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 파이 클럽>에 대해 알게 된다. 독일 점령하에의 암울한 시기에 클럽 회원인 엘리자베스의 기지로 우연히 만들어 졌다는 감자껍질파이 클럽, 새로운 글감 소재를 발굴 중이던 줄리엣은 그들의 이야기가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사람들의 감성을 울릴만한 소재라고 생각한다. 도시에게 보다 많은 자료를 부탁한 줄리엣은 클럽 회원들이 하나 둘씩 보내오는 편지들에 홀딱 반하고 만다. 마침내 줄리엣은 건지 섬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설레는 여행을 떠나고, 그런 그녀의 그런 행보가 그녀의 구혼자인 미남 재벌 마컴 레이놀즈에겐 못마땅하기만 하다.
한편 건지섬에 도착한 줄리엣은 클럽의 중심에 엘리자베스라는 여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클럽 회원들의 증언을 통해 줄리엣은 그녀의 모습을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어릴적 단짝 친구가 애를 낳는 것을 지켜주고자 섬에 남게 되었다는 엘리자베스는 수용소 사람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독일군에게 잡혀간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독일군의 만행을 미워하긴 했으나, 독일군과 인간으로써의 독일인을 혼동하지 않았던 현명한 여인, 적군의 군의관을 사랑해서 아이를 낳은 정열의 여인, 기지가 넘치고 용감했던 그녀를 사람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의 인간성에 반한 줄리엣은 그녀의 딸인 키트를 입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그녀를 더 사로잡는 한가지 사건이 발생했으니, 바로 그녀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줄리엣은 건지섬에 온 순간 알게된 그 느낌을 상대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게 되는데...
영국의 작은 섬을 배경으로 2차대전 중 섬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와 그들의 이야기에 반한 도시 처녀의 우정을 날줄로, 그리고 그 도시처녀의 사랑찾기 여정을 씨줄로 엮어낸, 미스 마플 같은 사서 할머니가 썼음 직함 로맨스 소설이었다. 장점을 꼽자면 우선 제목을 너무 잘 지었다는 것을 들어야 할 것이다. " 건지 아앨랜드 감자껍질 파이 클럽" 이라니...제목 만으로도 구미가 확 당긴다. 그럼에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은 지나치게 말랑하지 않을까 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지나치게 유치한건 아닐까 라는 우려... 읽어보니 다행히도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로맨스 소설에 비하면 우아하고, 기품 있었던데다, 재기 넘치는 대사들에, 선정적이거나 악당들이 득세하는 장면도 없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데 일조하지 않았을지 싶었다. 단지 의외라면 할머니가 썼음에도 지극히 로맨스 소설답게, 로맨스 소설의 한계를 고수하고 있더라는 점이었다. 아마도 작가인 메리 앤 셰퍼 여사님이 굉장히 착하고 낭만적인 여성이셨던 모양이다. 그 나이에도 이런 상상력이 숨겨져 있었던걸 보면 말이다. 하니 로맨스 소설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이 고르게 들어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음 한다. 로맨스 소설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꽤 되니 말이다.(특히 남성 분들에겐 뇌리에서 싹 지우셔도 될만한 책이 아닐까 한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사고, 보나 마나한 낭만적인 결론들, 거의 영웅적인(=개연성 희박한) 여성 주인공들에,그 영웅적인 주인공들에 걸맞는 엉뚱하고 선한 이웃들에다, 전쟁중의 혼란에 흔연히 대처하는 교훈적인 모습들이 어딘지 어색하고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쟁중에도 그런 휴머니즘이 살아있다면 참 좋긴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에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단 말이지. 어쨌거나, 해피엔딩에 훈훈한 이야기라 적어도 시간 낭비란 생각은 안 드실 것 같아 추천작으로 넣는다. 그나저나 찰스 램의 돼지구이 이야기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이 비단 나뿐이 아니란 것을 알게된 것은 매우 반가웠다. 역시 좋은 이야기는 인종이나 세월, 그리고 언어와 나이를 초월하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