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교도관 생활 9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나는 주임으로부터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 사형수 야마이를 지켜 보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신혼 부부 2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죄로 사형을 언도 받은 그는 항소도 하지 않은 채 긴 긴 밤을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 항소를 하라는 주위의 권고도 무시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야마이를 보면서 나는 아직도 찾지 못한 동생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을 보육원에서 보낸 나는 초등학교 시절 자살을 시도해 봤을 만큼 사는 것이 힘들었다.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던 삶을 끝내고자 했을 때 나를 잡아준 것은 바로 다름 아닌 보육원 원장님이었다. 그는 아메바와 나와의 연관성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 놓은 뒤, 삶의 기적을 함부로 포기해선 안 된다며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그 뒤로도 끊임없이 내게 간섭했었다. 읽을 거릴 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구석방에서 혼자 삭힐 시간도 주고, 성장기의 소소한 일탈도 눈감아 주면서 그는 내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특권을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지치지도 않고 나를 격려했다.

 

그런 원장의 간섭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친구가 자살을 했을 때도, 힘없고 순진해 보이던 죄수 한명이 실은 악랄한 연쇄 강간범이었다는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을 때도, 그리고 그 죄수가 너도 나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라는 말을 던졌을 때도 , 내가 한계를 넘어서지 않은 것은 그 분 덕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살인 본능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나는 사형수 야마이가 고아였고, 친척 부부로부터 엄청나게 학대를 받고 자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그가 안스러워진다. 야마이의 자살 시도 후, 부쩍 친해진 그에게 나는 왜 그 신혼 부부를 살해했느냐고 묻는데...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 등장인물들은 우울해서 미칠 것 같은 사람들이다. 부모가 계속해서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 성장한 주인공의 친구는 좌절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만다. 고아로 태어 날때부터 맞는데 이골이 난 야마이는 때리는 것에 익숙해지다 못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 둘이 우울한 밤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어쩜 그들 주변에 인간의 온기가 없었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주인공에게 보육원 원장님이 있었던 것처럼 그 둘에게도 따스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들 역시 그 밤을 이겨내고 새 날을 맞이 했을 것이다. 때론 삶이란 그런 날들의 이어짐일 때도 있으니 말이다.

 

흡인력있는 전개 방식과 군더더기 없는 묘사가 돋보이던 작품으로,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던 집중력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쓴 점이 장점이다. 사형제도의 비합리적인 점을 꼬집고 있긴 했지만 , 그런 이야기들은 그동안 워낙 많은 매체에서 들려 주었던 주제인지라 그닥 새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이 작가가 아동 학대나 청소년들의 살해본능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점이었다. 어딘지 개인적인 경험에서 기인된 것이 아닐까 싶던데,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안 된 일이지 싶다.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런 경험이던데, 그걸 겪어 냈다면 그 고통스러움에 대해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얼마전에 본 < 천사의 나이프>에서도 느낀 건데, 일본 작가들은 법에 대해 좀 무지하게 아닌가 싶었다. 아님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던가... 이 책에서 야마다가 열 여덟 육개월의 나이에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해 육개월의 차이로 사형이나 아니냐를 가른다는건 비합리적이라고 말을 하던데, 법은 단 한 개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합의에 의해 바꾸기 전까진 그것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노선이 된다는 의미다. 사적인 이유를 들어 나만 봐달라는 이야기는 다분히 유아적인 사고가 아닐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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