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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카민스키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3
다니엘 켈만 지음, 안성찬 옮김 / 들녘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무명의 잡지 기자인 쵤러는 과거 위대한 화가로 명성을 날렸던 마누엘 카민스키의 자서전을 집필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뛸듯이 기뻐한다. 어떻게 해서든 카민스키에게 이야기를 끌어내서 자신의 이름을 날릴 기회로 이용해 먹겠다고 다짐하는 그, '책은 반드시 카민스키가 죽은 다음에 내야 해, 난 이제 인세만으로 떵떵거리며 먹고 살 수 있겠지' 라며 이솝 우화에 나오는 계란 팔러 가는 처녀처럼 꿈에 부푼다. 하지만 그런 그의 희망은 산 꼭대기에 살고 있는 카민스키의 집을 방문하면서 부터 꼬이기 시작한다. 너무도 늙고 쇠약해서 죽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카민스키, 그를 인터뷰하려 안달이 난 쵤러는 그 "원천 자료 그 자체"를 이용하는데에 심각한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카민스키의 딸인 미리암으로 그녀는 사사건건 자신에게 물어보라면서 쵤러가 아버지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던 쵤러는 미리암이 집을 비운 사이 카민스키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다. 쵤러가 무심결에 카민스키의 첫사랑에 살아있다고 발설하자, 오랫동안 그녀가 죽은 줄 알았던 카민스키는 갑자기 그녀에게 데려가 달라고 명령한다. 하는 수 없이 카민스키를 데리고 길에 나선 쵤러는 멍청하고 힘없는 노인네인줄로만 알았던 카민스키에게 자신이 휘둘린다는 인상을 받지만 애써 그럴리 없다고 무시하는데... 과연 성공을 위해 못할 것이 없다는 이 시건방진 사내는 그의 계획대로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미리암에게 감옥에서 빼내 줘서 고마워 하더라는 카민스키의 말을 전하자 그녀가 정신없이 웃어 제낀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영리한 줄 아는 31살의 쵤러, 타인은 멍청하고 무식해서 세상 돌아가는걸 잘 모른다고 자신하는 이 밉살맞은 사내가 늙은데다 병들었으며 눈까진 먼, 한마디로 만만한 노화가에게 어떻게 멋지게 당하는지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던 참신한 소설이었다. 짧은 분량임에도 어찌나 많은 이야기를 쉴새 없이 풀어놓고 있던지 따라가기에도 정신 없었는데, 독일 문학계의 재담꾼이라는 닉네임이 무색하지 않은 입담이지 않는가 한다. 얼마전 읽은 <세계를 재다>의 저자 다니엘 켈만의 작품으로 역시 그의 탁월함은 일회성이 아니란 것을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화감독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던데 , 특히 과거의 회상들을 현재 들려오는 대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수법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희곡성이 워낙 농후해서 각색 필요없이 책 그대로 들고 영화를 찍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마 그랬다면 깜찍한 블랙 코미디 수작 한편이 나왔겠지...
군더더기 없는 속도감 있는 전개에 , 개연성 넘치는 개성덕분에 살아 돌아 다니는 듯 생생한 등장인물들 , 저널리즘과 예술의 위선에 대한 과감한 풍자, 인생을 통찰할 줄 아는 시선등으로 꽤 재밌게 봤다. 저자가 28살에 쓴 소설이라는데...참, 할 말이 없다. 이 정도의 탄탄한 글재주라면 사방팔방으로 건방을 떨고 다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식상하지 않는 소설을 읽고 싶다시는 분에게 권한다. 그리고 이렇게참신한 작품을 골라 꾸준히 출간해주시는 들녁 출판사에게도 그냥 넘어갈 수 없어 한마디... 그들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Good J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