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년 시절 알콜 중독으로 가족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떠나 자수성가한 맥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아름다운 아내 낸을 만나 비로서 평온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 바랄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맥의 인생은 아이들을 데리고 야영을 떠났던 어느 여름 영원히 바뀌고 만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다섯 살 미시가 소아 연쇄 살인범에게 납치되고 만 것, 끝내 딸의 시체마저 찾지 못한 맥은 슬픔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하나님을 원망하며 멀리하게 된다. 그렇게 슬픔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던 어느 겨울 날 맥의 우편함으로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쪽지가 날라 든다. "맥,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파파" 평소 아내 낸이 하나님을 파파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맥은 그 쪽지라 정말로 하나님에게 온 것인지 의아해 한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그는 결국 죽어도 가기 싫었던 그 오두막으로 발길을 옮긴다. 딸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있는 그 오두막에서 과연 그는 어떠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인가? 그를 따라다니던 슬픔과 딸 미시를 향한 그리움, 그리고 살인범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쳐있던 그는 하나님을 만나면 우선 그때 당신은 도대체 어디 있었느냐고 따지겠다고 다짐을 하는데...

 

우린 누구나 살다보면 영문을 알 길 없는 비극이나 상처, 고통을 겪기 마련이다. 그럴때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다면 아마 가장 만만한 상대는 하나님이 되지 않을까. 우린 한껏 냉소적인 어감을 담아 " 당신이 그렇게도 전지하다면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두었냐고" 그의 무능을 지탄하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 "당신이 우릴 사랑한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지!" 라고 따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여기 이 책의 주인공 역시 자신의 슬픔과 고통에 못이겨 하나님께 따질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친히 그를 보자고 하신다. 만날 장소로 고른곳은 바로 그의 고통이 시작된 그 오두막, 딸이 살해된 장소에 가게 된 그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왜 비극은 일어나며, 사랑이란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은 왜 악인을 재판하시지 않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서로를 용서해야 하는 가에 대해 깨닫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과 사흘을 보낸 그는 마침내 그가 상처로 지었던 오두막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 책의 기본 줄거리였다.

 

이 책의 아마존 리뷰 평을 보니 독자들의 좋고 싫음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독교 신자들의 경우는 딱 내 책이라면서 별 다섯 개를 주는 반면, 완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성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신자로써 좋은 책이라고 팔짝 팔짝 뛰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결론만 말하자면 내겐 별로 감흥이 없었다. 이런 책을 볼때마다 느끼는 건데 난 감성보다는 머리를 때리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가 한다. 매트릭스의 오라클을 연상하게 하는 여성이 하나님으로 나오는 것이나 고통을 치유해보겠다는 생각은 맘에 들었지만, 천국을 연상하게 하는 정원이나 죽은 미시가 등장해서 아빠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장면,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과 같기에 연쇄 살인범도 용서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좀 식상하게 들려왔다. 앞부분의 지루한 과정들을 참고 읽은 것은 뒷부분에 맥이 어떻게 자신을 치유할 것인가가 궁금해서였건만, 보람도 없게시리 뭐 별게 없네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심오한 신학적 통찰력으로 이루어진 뜨거운 사랑의 선물"이라고 존경하는 서광선 선생님이 이 책에 대해 한마디 하셨던데, 한 10년뒤에 읽으면 생각이 달라지려나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별로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은 미적지근조차 안 했으니, 아마도 내 심장엔 온도계가 고장난 모양이다. 하니,나처럼 심장에 온도계가 고장났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주의 하시길..지루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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