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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한 카페에서 만난 중년의 두 사내 아드리안과 마틴은 베른까지 동행하기로 하면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아내를 백혈병으로 잃은 뒤 딸 레아를 키우고 있던 마틴은 딸이 바이올린에 매료되자 당장 바이올린을 사서 안긴다.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드러나는 레아의 천재성에 마틴은 딸을 위해 모든 희생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바이올린이 연주자의 기교도 중요하지만 바이올린 자체의 개성에 따라 울림이 다르다는건 널리 알려진 사실. 마틴은 보다 좋은 바이올린을 사주고 싶어하지만 명품 바이올린은 교수 월급으로 언감생심이었다. 연주자로써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보이던 레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연약한 불안이 잠재되어 있었다. 부자인 다비드 레비에게서 유명한 아마티를 선물받은 레아는 승승장구하지만 레비와의 결별이후 다시 마음의 문을 닫고 만다. 딸의 마음과 인생을 되살릴 길이 명품 과르네리밖에는 없다고 판단한 마틴은 긴 망설임끝에 그의 인생을 건 도박에 나서기로 한다. 그를 재판정에까지 서게 만든 그의 집착과 무모함은 과연 딸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마틴의 우수에 찬 넋두리를 듣던 아드리안은 점차 그의 삶에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을 많이 접해본 것이 아니라 단정하긴 그렇지만(실은 달랑 2권), 그는 아마도 추적추적 쓸쓸하게 비오는 날이나 지독하게 흐린 날만 골라 주로 글을 쓰는게 아닐까 싶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배경처럼 그런 풍경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차창밖으로 보여지는 묵직한 거리랄지, 코트를 움켜쥐고 움츠리며 걸어가는 안개 자욱한 오솔길, 저 멀리 먹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기차 여행들을 생각나게 한다. 만화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처럼 내 머리위로 작은 번개구름비가 따라다닌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고독하고 또 홀로인 사람들,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고, 예민하며, 불안정한데다, 태생마저 적막하여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을 닮지 않았을까 싶은 메르시어는 melancholy 즉, 감상적이고, 우울하며, 침울하고, 슬픈이라는 형용사가 어울리는 사람이였다. 그렇다보니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대개 자살로 끝을 맺더라는건 당연한 귀결이겠지. 고통마저 아름답게 느껴지는 우아한 문장들, 쓸데없이 방황하는 듯한 감정 과잉에다 소모적이고 날이 선 감정 싸움들로 내겐 다소 감상적으로 느껴지던 소설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늘 어긋나는 등장인물들에, 안정이나 인정 평화보다는 질투, 폐쇄된 마음,거리감, 불안, 고통, 남과 다르다는 자각등으로 괴로운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소외시키다 파멸로 이끄는지 보여주던 소설이었는데, 탄탄한 문장에 이해 어렵지 않는 섬세한 심리묘사로 무게감이 느껴진다는 것이 장점이다. 서로를 넘을 수 없는 낯설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던데, 그런것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겐 반가울 지도 모르겠다. 예쁜 소설이긴 했지만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이야기 자체에도 그닥 매력을 못 느꼈지만, 감정선으로만 이어진 문장이나 인간이 낯설다는 것에 흥미가 없어서인가 공감가는 장면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니, 평소 이 블러그 쥔장과 취향이 다르다고 생각하셨던 분들은 기뻐하시라. 이 책은 당신의 책일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