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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ㅣ 갈릴레오 총서 3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말도 안 돼. 이렇게 어려울 리가 없는데... 얼핏 무른 평지 같아 보여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들어갔더니만, 가면 갈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에 홀라당 빠진 기분이었다. 허우적대며 내 기필코 내 힘으로 빠져 나가고 말리라,오기가 생겼다. 분명 살란데르( 추리소설 밀레니엄의 여자 주인공, 2편인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에서 수학의 천재인 그녀가 페르마의 난제를 증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가 쉽다고 했는데...천재긴 하지만 살인범에게 쫓겨가면서 증명방법을 생각해냈을 정도라면 이렇게 어려울 리가 없는데 말이지...궁싯거리다 난 드디어 깨달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속 설정이라는 것을. 살란데르는 결코 페르마의 마지막 난제를 풀었을리 없다는 것을...
17세기 천재 아마추어 수학자였던 페르마가 자신의 노트 한 구석에 " Χⁿ+Υⁿ=Ζⁿ: n이 3이상의 정수일때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 Χ, Υ, Ζ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이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 옮기진 않겠다..."고 남긴 이 한마디에 과거 350년동안 수 많은 수학자들은 좌절을 해야 했다. 이유는 물론 그 여백이 좁아 옮기지 못했다는 페르마의 증명을 그들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뜻 n에 숫자를 대입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은 공식이지만 그것이 직관적으로 옳음을 안다는 것과 증명을 해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던 것이다. 정밀함과 엄밀함을 생명처럼 여기는 고지식한 수학자들은 경이적인 방법(아이디어)를 썼다고는 하나 페르마 자신이 옮겨야 한다고 굳이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간단해 보이는 그 증명에 너도 나도 도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알쏭달쏭 퀴즈같이 보이던 그 정리는 곧 난공불락의 요새임이 밝혀지고...한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 증명을 해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했던 수학자들은 점점 좌절의 나락으로 빠지더니 결국 그것이 해결 불가능한 정리이지 않겠느냐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1997년 " 이쯤에서 끝내는게 좋겠습니다." 라는 말로 증명에 성공한 앤드류 와일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소년시절 페르마의 정리에 얽힌 사연을 읽고는 언젠가 그 증명을 해내고 말겠다는 꿈을 가졌던 와일즈는 23살이 넘으면 정년을 넘겼다고 생각하는 수학계에서 30대 중반에서야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칩거에 들어간다. 7년간의 연구끝에 증명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와일즈는 발표를 앞두고 검증에 들어가지만, 허점이 나왔다는 소식에 당황하고 마는데...
와일즈가 우여곡절끝에 증명에 성공한 과정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서스펜스로 그려진 이 책은 수학에 관한 책이긴 했지만 그보다는 인간 탐구 정신의 도전과 한계는 어디인가를 들려주고 있는 책이 아닌가 싶었다. 페르마를 비롯해서 많은 당대 수학의 천재들의 면면들을 살펴 보는 것이나, 수학의 역사에 관련된 이야기들, 그리고 전공자들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수학 증명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흥미진진하고 새로워서 수학이 이렇게 재미난 학문이었던가 새삼 그리움이 들 정도였다. 학창시절 수학이라면 넌더리를 냈던 내 과거를 떠올리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리움이긴 하지만, 어쩜 이렇게 그립다 말할 수 있는 것도 다 이젠 수학을 안해도 되기 때문이 아닐는지 싶다. 소설처럼 쉽게 읽히는 점이 장점이니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하시진 마시길 바란다. 수학 잘 몰라도 읽는데 지장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건 수학자들과 그들의 일화가 이토록이나 매력적이었다니! 라고 놀랄 정도로 깔끔하고 맛깔나게 써내려간 저자 싱의 공이 컷다고 본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1.살란데르는 절대 그 증명을 생각해냈을리 없다.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반짝이는 영감 하나로 증명할만한 정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2. 페르마가 그 정리를 증명해낸 것이 사실일까? 난 아닐거라고 본다. 그간 수학 분야에서의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이토록이나 어려웠는데, 350년전 원시 수학만을 알고 있던 아마추어 페르마가 증명을 해냈다는 것은 솔직히 믿겨지지 않는다. 책을 읽고나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쩜 그는 후대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것도 아님, 증명해냈다고 착각을 했거나,무작정 숫자를 대입하는 식으로 맞다고 생각했거나...아님 말고...
3.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수학의 천재들은 타고 태어난 사람들이란 확신이 든다. 특출난 수학 천재들이 아리아계 인종에 많은 것은( 인도인이나 독일계) 결국 유전의 탓일까? 흥미로운 의문이다.
4.그래서 그 늪에서 빠져 나왔느냐고? 물론이다. 물론 그것이 쉽게 서술하는 이 저자의 능력 덕분이긴 하지만서도. 내 힘이 아니었다 한들 무슨 상관 있으리요. 중요한 것은 일단 빠져 나왔다는 것 아니겠는가.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