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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오피스쿠스의 최후
조슈아 페리스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닷컴 신화의 흥청망청하는 분위기 속에 광고 회사에 다니고 있던 우리들은 정리 해고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술렁이기 시작한다. 평소 마지못해 끌려 나왔다는 듯한 표정으로 회사에 나와, 어떻게하면 일을 안 하고 시간을 죽일까로 고민하던 우리들, 루머 전담반인 직장 동료 베니의 지휘하에 남의 스캔들이나 씹는 것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신랄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현재와 타인을 재단하며, 불만이 무엇이건 간에 직장을 그만 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우리들은 정리해고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느슨했던 직장내 분위기와 결별을 고하고 만다. 일시에 살벌한 도살장이 되어 버리고 만 회사, 불안과 분노,광기와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자, 우린 한때 우리가 어엿한 성인이었다는 사실을 창문으로 날려 버린채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시작한다. 의자 하나 가지고 쟁탈전을 벌이질 않나, 소소한 물건들은 은근슬쩍 사라지고, 해고된 이후에도 꾸준히 회사에 출근하는 동료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 하게 되며, 이혼에 이은 해고에 앙심을 품은 나머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다니는 전직 동료를 경계해야 하는가 아닌가로 걱정하게 된다. 유괴 살인으로 딸을 잃은 뒤 정신줄을 놓아버린 동료, 아내와의 불화를 참지 못한 채 약물 과용으로 정신 병동으로 실려가는 동료등 이제 직장은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군상들의 다양한 소동들로 점철되는데, 그런 와중에도 늘 소나무처럼 끄떡않던 일중독자 부사장 린이 유방암에 걸렸음에도 수술할 생각을 하지 않자, 우린 그녀를 도와야 하는가 아닌가로 분열하기 시작하는데...
" 우리는 까다롭게 굴면서 많은 보수를 받았다. 아침이 되어도 기대할 것은 없었다.( " Our mornings lacked promise" )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닷컴 신화가 꺼지고 난 이후인 2001년 잘 나가던 광고회사의 직원들이 살벌한 정리해고사태에 직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소동들을 마치 시트콤을 보는 듯 생생하고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던 작품이다. 이야기 전개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여서 마치 내가 그 광고 회사의 동료 직원인양 감정 이입해서 읽기 어렵지 않던 잘 쓴 소설이었다. 직장이라는 집단내에서의 여러 갈등 상황들을 설명한다는 느낌없이 유려하게 펼쳐 놓은 것이나, 개성 확실한 덕분에 살아 있는 사람 보는 듯했던 등장인물들, 다들 냉소적이고 이기적인면에서는 한가닥들 하는 사람들, "나만 살아 남으면 돼" 라는 구호를 달고 살 듯한 사람들이 그들의 인간미를 적절히 보여주는 장면들에선 애틋하기 까지 했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등장인물들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동료라든지, 과거 내가 몸담았던 집단의 모습을 보는 듯 현실감 넘치는 점도 높이 사고 싶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인생>이 살아있고, 또 그들이 어떤 굴곡을 거쳤든지 간에 성장을 해 나가더라는 점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우린 종말을 향해 내달렸으나, 하지만 과거를 생각해보면 그때가 바로 우리 인생의 전성기였다고 회상하는 우리들의 자화상. 탄탄한 소설을 읽고 싶다는 분들에게 강추한다.특히 직장에 다니면서 여러가지 소소한 일들로 맘 상해하는 분들에게 적당한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적어도 나만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