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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묘촌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일본 전국시대, 적을 피해 외진 마을로 도망쳐 온 무사 여덟명의 금괴가 탐이 난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함정에 몰아넣고 몰살시켜버린다. 그 후 혼령의 후환이 두려워진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례 치뤄준 뒤 을 이름을 '팔묘촌'으로 짓고 마을 수호신으로 받들어 모신다. 몇 세대가 흐르고 난 뒤 ,마을의 섬뜩한 살인 광기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국방방곡곡에 알리게된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다지미가 가문의 망난이 요조가 가출한 아내를 색출한다는 미명하에 하룻밤새 마을 사람들 32명을 일거에 죽이고 만 것, 사람들은 끔찍한 학살이 무사 혼령들의 저주 때문이라고 수근대면서 언제 다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벌벌 떨기 시작한다.
그 후 29년이 흐른 뒤 고아인 청년 타츠야는 난데없이 자신을 찾는 광고에 놀라고 만다. 사기일거라 생각한 그 광고는 바로 팔묘촌에서 다지미 가문의 적자를 찾는 것으로, 타츠야의 엄마는 요조의 변태적인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친 두번째 아내인 것으로 밝혀진다. 자신의 피속에 연쇄 살인범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타츠야는 경악하는 한편, 자신에게 거액의 유산이 쏟아진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마을에 절대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정신이 팔린 그는 팔묘촌으로 가보기로 하지만, 자신이 가는 곳마다 시체가 양산되자 적잖이 놀라고 만다. 하지만 놀라 앉아 있을 새도 없이 쉴새 없이 터지는 사건들로 그는 혼란속에 빠지고 만다. 툭하면 협박조로 나오는 마을 사람들과 쌍둥이 고모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들,살인범을 체포하겠다고 나선 어리버리 탐정의 출연과 자신을 좋아한다고 쫓아다니는 사촌등 정신이 없는 가운데서도,그는 자신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해보려 나서는데, 과연 팔묘촌에 내려진 저주에서 그는 무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하필이면 왜 그의 출연과 더불어 팔묘촌에 연쇄살인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만약 그것이 마을 사람들의 말처럼 여덟 무사들의 저주가 실현된 것이라면 어떻게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있을 것인가?
하루 밤새 23명의 마을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의 실화를 배경으로, 폐쇄되다시피 고립된 마을 안에서 벌어진 광기과 무지,탐욕과 잔혹함 범벅의 살인사건을 그린 추리 소설이다. 끝을 보기 전까진 손에서 내려 놓기 힘든 박진감 넘치는 긴장감과 실화를 소재로 한데서 오는 자연스런 현장감과 현실감, 구성의 치밀함과 기괴한 마을의 존재가 주는 신비스러움,패쇄된 공간이 주는 압박감,그리고 인간본연의 악과 등장인물들의 개연성등으로 인해 일본 추리 소설의 정점이라는 찬사가 무색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있는 소설이었다. 추리를 풀어가는 어리버리, 왕따에 은근무시당하면서 기가 죽지 않은 긴다이치 코스케 탐정의 매력과 갑자기 부잣집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꿈이 부풀었다가 지옥을 경험하게 되는 타츠야의 나레이션이 꽤나 설득력있게 다가오던 소설이었다.이 책을 통해 광기가 극을 달해 하룻밤 새 닥치는 대로 살인을 한 연쇄살인범이 종종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는데,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다는 것은 적잖이 놀라운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선 83년에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던데 그리 오래된 세월도 아니건만 ,참 잘도 잊고 산다 싶다. 하긴 도를 넘는 인간의 광기를 그리 오래 담아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요코미조 세이시같은 추리 소설 작가를 빼면 말이다. 완성도 높은 추리 소설을 읽고 싶으신 분들에게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