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백혈병에 걸린 케이트를 위해 맞춤 아기로 태어난 안나는 이번에는 신장을 기증해 달라는 엄마의 요구에 변호사 켐벨을 찾아간다.제대혈부터 골수 이식까지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언니의 생명줄 노릇을 했던 그녀가 이젠 신장을 줄 수 없다면서 부모를 고소한 것이다.고소장을 받아든 엄마는 분노하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과거 변호사였던 경력을 되살려 자신의 변호에 나선다.엄마의 간곡한 호소에도 안나의 마음은 흔들릴 기미가 없고 그들의 재판은 곧 언론의 관심을 끌어 모으게 된다.딸을 살리는 것 외엔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는 엄마,포기하지 않으려는 엄마가 버거운 아빠,실질적인 부모의 부재를 마약과 술,방화,절도등 일탈로 앙갚음하는 오빠,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장기 기증자라는 감옥 안에 살고 있는 안나,그리고 죽음에 한 다리를 걸친 채 위태롭게 살고 있는 케이트...십여년에 걸친 케이트병치례는 사실상 가족 구성원들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딸이 죽는건 못보겠다는 엄마를 그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이젠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는 열 세살 안나의 바람은?그 누구의 손도 들어 줄 수 없는 가족들의 절절한 사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솔로몬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과연 타협을 모르는 잔인한 병마앞에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버텨 내고 있던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

 

맞춤 아기에 대한 논란 때문에 본 책은 아니다.그 보다는 맞춤 아기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기로 한 열 세살 소녀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집어 든 책이다.처음엔 그깟 신장하나 못 줄게 뭐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13년동안 안나가 언니에게 준 것들의 목록을 보니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안나 역시 백혈병 환자 못지 않게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 나이 이제 겨우 열 셋,내가 그녀라고 해도 "Enough!"이라고 외칠 것 같다.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걸다니...가족끼리 "말"로 해결해도 될 일을 거창하게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것을 보니 역시 소송의 나라다운 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 기증을 둘러싼 가족들의 드라마가 소송으로 비화된 사건들은 언제나 언론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생명과 관련된 절박한 상황도 상황이지만,소송으로 번질 정도가 되었다면 그 이면엔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기증자가 버려진 이복 동생이였다든지,판단 능력이 없는 정신 박약아 형이라든지...하지만 확자지껄한 소동과 논란만 요란한 채 정작 그에 대한 판결이 없는 것은 수혜자가 소송이 진행되는 도중 사망하기 때문이다.그만큼 장기 기증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이고,소송이 걸릴 정도의 불화라면 이미 게임 끝이라고 보면 된다.그렇다면 왜 작가는 이 발칙한 소녀에게 소송을 걸게 한 것일까? 설득력있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장기 기증이 학대에 가까울만치 가혹한 것이었다든지,아니면 가족내에서 안나의 위치가 단지 기증자로써의 의미밖에는 없었다든지...처음부터 소설은 그런것들을  부각시키면서 독자들의 화를 돋운다.그래,인간이 실험실의 돼지도 아니고 말이야,아무리 부모라도 그러면 안 되지.안나가 가엾어지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안나의 결정을 지지해주고 싶어진다.하지만 작가는 마지막에 전혀 다른 결론의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안나가 정말로 이 소송을 했어야만 했던 이유를 불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소설은 분위기가 싹 바뀐다.고발 소설에서 감동적인 가족 소설로 탈바꿈한 것이다.참 일관성있는 소설 구도라고 아니 말할 수 없겠다.가족애를 강조한 결론에 그럼 그렇지..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긴 했지만,왠지 찝찝한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속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언니를 위해서였다면 왜 진작에 안나는 엄마와 상의하지 않은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가족간의 대화로도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를 거창한 소송으로 비화하다니...결국 백혈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장기 기증을 둘러싼 논란을 최대한 드라마틱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가 억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그것이 소설로써는 재밌을런지 모른다.하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불타고 있는 건물에 뛰어들어 누군가를 구해낼 의무는 없다.그러나 건물 안의 사람이 당신의 아이라면 모든 게 달라진다.
맞는 말이다.내가 여기에 덧붙일 말이 있다면 건물안의 아이를 살리고 싶다면 우선 이성을 차리는게 좋을 거란 것이다. 만약 당신이 울고불고 질질 짜면서 내가 얼마나 그 아이를 사랑했는데 하는 감상을 남발한다면 그동안 건물은 홀라당 다 탈 것이기 때문이다.감상 사절이란 말이다.사실 가족안에 병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사자들이 느끼는 체감 드라마는 차고 넘친다.거기에 다른 드라마를 덧붙일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멍청한 인간이거나 철저히 현실을 외면하는 나르시스트임이 분명할 것이다.이성을 차리고 상대하기도 버거운 병마를 두고 눈물선을 자극하는 가족주의 표방 멜로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는 작가가 참 가벼워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진짜로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면 이런 소설이 나오진 않았을 테니까.현실은 이보다 더 무자비하기에 드라마나 감상이 끼여들 틈이 없다.결국 소재를 제대로 팔기 위해 머리를 짜낸 소설로 로맨스류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싶었다.읽기에 편하고 감동적인데다 낙관적이지만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았으니까.탄탄하니 재밌는 소설이긴 했다.시간 때우기용으로는 괜찮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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