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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주의자의 딸 - 유도라 웰티의 소설
유도라 웰티 지음, 왕은철 옮김 / 토파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강인했던 엄마가 시력을 잃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때 아버지는 자신을 낙천주의자라고 선언한다.아내를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한 그는 모든 것이 괜찮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어디 현실이 인간 마음대로 되던가...4년동안 발악하다시피 투병을 한 엄마는 증오속에 눈을 감고,이제 그 아버지마저 수술을 받고 병실 침대에 묶여 있다.아버지의 낙천주의 때문에 힘들어 했던 그녀는 이제 반대로 아버지에게 낙관을 들이민다.다 괜찮아 질거라고...과연 낙천주의자의 딸 답지 않는가?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있던 로렐은 아버지의 건강이 심상찮다는 말에 한걸음에 달려온다.일년 반전 70대의 아버지는 딸보다 어린 페이와 재혼함으로써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눈 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아버지를 간병하던 로렐은 천박한 계모 페이와 사사건건 부딪힌다.하지만 괜찮아지실거라는 희망을 뒤로한 채 아버지는 결국 사망하고, 로렐은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고향집으로 향하게 된다.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오래된 이웃들과 그녀의 과거들이었으니,로렐은 장례식을 치르는 그 짧은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을 지켜 보면서 자신이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회상하게 된다.갑작스런 죽음이 몰고 온 허식에 찬 말들,졸지에 과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지 않는 계모 페이,단체로 도착한 페이의 가족들,그들을 지켜보면서 혀를 차는 이웃들까지...로렐은 이미 자신의 소유가 아닌 어린 시절의 집을 돌아보면서 비로서 과거를 재조명하게 된다.직선적이었던 엄마의 발병,아내가 힘들게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던 아버지,그런 아버지 비겁함 때문에 엄마의 죽음을 감당해야 했던 시절의 아픈 기억들.그리고 신혼때 전사해버린 남편 필과의 추억,모두를 경악케한 설명 불가 커플 페이와 아버지...회상이 돌고 도는 가운데 로렐은 자신이 얼마나 과거와 절연되어 있었던가를 깨닫는다.아버지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 페이가 아닌가 의심하던 로렐은 결국 불가피하게 그녀와 맞서게 되는데...
한 판사의 장례식을 중심으로 아버지의 죽음으로 뜻하지 않게 고향집에 돌아온 한 여인의 내면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던 소설이다.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지적인 대화와 섬세한 내면 묘사를 통해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지키내는 딸의 어려움을 잘 표현하고 있었는데,특히 죽음과 상실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너무도 쉽게 설명해 내던 것과 이음새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전개과정이 인상적이었다.언뜻 쉬워 보일지 모르나 실은 그것이야말로 거장들이나 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마치 잔잔한 영화 한편을 보고 있는 듯했던 소설로 아마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 더 현실감 있었지 않나 싶었다.1973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여성분들에게 더 알맞는 소설이 아닐까 한다.
<밑줄 그은 말>
"나는 낙천주의자일세"
"저는 그런 동물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매켈바 판사(아버지)가 냉소적으로 말했다."어떤 것의 마지막을 보았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말게나."
---P.18
자신을 낙천주의자라고 했던 그는 단 한 번도 희망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이제, 그것을 그에게 들이미는 사람은 그녀였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희망일지도 몰랐다. --- p.45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짐을 지우는가. 그들이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때, 우리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붙들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들이대면서 말이다. 기억의 영원성, 해악에 대한 경계, 자신감, 희망, 서로에 대한 믿음 등 들이댈 수도 없고 붙들 수도 없는 것에 집착하면서 말이다. --- pp.206~207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죄의식은 당연히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