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 어린 시절의 체벌과 학대가 이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
앨리스 밀러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6년 8월
평점 :
언젠가 오프라쇼에 7년간 계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18살 청년이 나온적이 있었다.그때 생모 역시 아들과 함께 쇼에 출연했었는데,그녀는 자신은 전혀 그런줄 몰랐다면서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해했었다. 계부는 당시 소아 성추행죄로 감옥에 들어앉아 있었고,일찍 철이 든 듯한 아들은 엄마의 흐느낌에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할때니 그럴 필요없다면서 엄마를 다독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그건 엄마 잘못이 아니었으니 너무 미안해 하지 말라고 두둔하면서...
놀라운 반전이 전해진 것은 그 뒤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쇼에 나와 용서해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그 엄마가 감옥에서 나온 계부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이었다.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던 아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어떻게 이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하는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한없이 안스러워 보이던 그때 오프라와 정신과 의사가 내린 처방은 정말 후련했었다.정신과 의사는 "당신의 엄마는 이제 엄마로써의 자격을 잃었다.계부를 선택하므로써 아들을 버린 것이니까.엄마도 어른이니 무슨 선택이건 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결과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그러니 더 이상 엄마에게 미련을 버리고 난 이제부터 고아라는 생각으로 앞으로 나아가라고"조언을 해줬다. 만일 용서한다는 맘에도 없는 제스쳐를 했다간 당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거라고 충고를 해주면서.보는 사람들 모두 박수를 쳤고 나는 그만 크게 감명을 받았다.와,저렇게 조언해줄 수도 있구나,우리나라 같으면 "그래도 엄만데..."라면서 과거는 잊고 가족으로써 잘 살아보라고 조언했을 것이 뻔했을테니 말이다.그게 당사자에겐 얼마나 가혹한 일이고 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나 답답하게 하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으면서. 원래 남의 일이란게 엄청 쉬워 보이는 거 아니겠나.
폭력의 기억(부제--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보고서다.본인도 어린 시절 엄마에게 가혹한 학대를 당했다는 작가는 학대당한 아이들의 상처를 더 덧나게 하는 것으로 십계명중 4번째 계율인 "부모에게 효도하라"를 들고 있었다.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대했건간에 자식은 그저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며 보살펴 드려야 한다는 말이 그들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여기서 잠깐 생각 해보기 바란다.만약 타인이 당신을 상습적으로 구타하고,강간하며,추행하고,욕설을 퍼붓고,모욕을 가한다고 해도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일지. 나라면 차라리 미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제 정신을 가지고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가족간에는 통용된다는 것이 바로 이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아마도 당신을 잘 가르치려 그런 것일거라고(구타의 경우) 당신이 유혹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라고(근친상간이나 강간의 경우) 그냥 입이 좀 거칠었을뿐 본심은 나쁜 사람이 아닐거라고, 당신을 사랑하면서도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 폭언과 모욕의 경우)... 사람들은 갖가지 변명들을 생각해 내면서 부모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희생자인 아이들에게 이해할 것을 주문한다. 부모에 대한 분노? 절대 안 된다. 몸에 안 좋으니까. 용서 하라고, 그들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랬을 뿐이라면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용서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그럴 듯하게도 들리기도 한다.내가 그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면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하지만 그것은 함정이라고 한다.어린 시절의 학대를 이성이 이해한다해도 몸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면서...용서하려는 이성과 분노하려는 몸(무의식) 사이의 갈등은 결국 당신의 몸을 망가뜨릴 것라는 것이 이 작가가 주장하는 것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혈육의 연은 끊을 수 없는 거라고 말하는 세상의 도덕론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다.그녀는 그 예로 자신의 학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문학속에 남긴 작가들의 예를 들고 있었다.하지만 그 예들이 아니라도 그녀의 분석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지 않는가 싶다.
팁1--어린 시절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그들이 살아가면서 느낄 정체성의 혼란과 까닭없는 분노,우울,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그만 단서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팁2--다만 이 책이 다소 편향되어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겠다.어린 시절 학대를 받고 자라서인지 작가 앨리스 밀러는 온 세상을 학대의 징후로만 해석하고 있었다.카프카의 아버지가 학대자라는 사실은 유명한 것이지만,프루스트의 엄마가 학대자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지나쳤다.프루스트의 천식이 엄마의 학대때문이라고 하던데,그건 아니다.그는 그저 몸이 약했을 뿐이고,때론 유전자의 영향이건 체질 때문이건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병에 걸린다.모든 질병을 학대의 탓이라고 돌리는건 좀 과했다 싶었다.이 작가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일생을 좌우하는 잣대(치우치면 편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것 같아 씁쓸했다.만일 자식이 다양한 세상에서 다양한 사고를 하면서 살기는 원한다면.부모들이여,제발 자식을 학대하지 마시라.어떤 이유를 대건 그건 끔찍한 죄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