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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
캐롤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부모를 암으로 차례로 여윈 뒤,오랫동안 그녀를 매혹시켰던 술과의 전쟁같은 사랑을 힘들게 끝낸 캐롤라인 냅은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워 한다.그 공백을 메워줄 대상을 찾지 못해 암담하게 살고 있던 그녀는 개나 한번 키워보는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아무 기대 없이 개 보호소에 들린다.거기서 강아지 루실을 발견한 그녀는 바로 "이 개"라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루실을 입양한다.그때부터 시작된 개와의 동거는 그녀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 주고,남들 못지 않은 극성으로 개사랑에 열정적으로 동참하는 자신을 보면서 본인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데...
원제가 Pack of Two로 우리나라 말로 번역을 하면 "우리는 짝꿍"정도가 되겠다.자극적이란 점에서 보면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가 나을지 모르겠지만 실은 원제가 더 이 작가의 의도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원제의 어감을 살리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그녀가 말하려는 건 정확히,남자보다 개가 더 좋다는 말이 아니라,개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라는 것이었으니까.
우선 이 작가의 이력에 대해 말을 해야 겠다.저명한 정신과 교수인 아빠,화가인 엄마,명문가 출신의 브라운 대학 우등 졸업에 빛나는,한마디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이력의 소유자인 그녀는 하지만 20대를 거식증과 알콜 중독에 빠져 아찔하게 보낸다.자신의 알콜 중독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를 <술 ,전쟁같은 사랑의 기록>이라는 책에 풀어 놓으면서 비로서 자신이 왜 그렇게 알콜 중독에 빠질 수 밖에는 없었을까 자문하게 된 그녀,해답은 그리 멀리에 있지 않았다.완벽 그 자체인 가족 구성원들이었지만 실은 온기라고는 찾아볼래야 볼 수 없었던 냉냉한 집안에서 성장한 냅은 자신이 따스함을 찾아, 공허함과 낮은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고,모든 감정들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술을 들어 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어디 술을 끊었다고 여지껏 존재했던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나? 오히려 이젠 술도 없이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질식할 듯 절망하고 있는 그녀에게 바로 기적처럼 루실이 찾아온 것이다.그녀는 루실을 보살피면서 비로서 자신이 "긍정적이고 좋은 인간이며 괜찮은 인간"이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따고 한다. 더군다나 7년간 사귀었지만 커플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던 남자친구와의 결별 하게 된 후 그녀에겐 루실의 존재가 더욱 더 커다랗게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루실이 없었다면 그 시기를 어떻게 견뎠을 지 모르겠다고 하는 말에 친구가 이해를 못하자 그녀는 이 책을 쓰기 시작한다.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세파에 맞서 그녀는 이해를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실은 그들은 절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개가 인간이 주지 못하는 위로를 주고 ,치유를 해주며 , 삶의 온기를 보태주고 ,따스한 애교와 판단하지 않는 애정을 준다는 것을 그녀는 설명하고 싶어 했다.제발,알아 달라고.난 그 누군가에게 이렇게 감사한 적이 없었는데,바로 그 상대가 "개"라는 것을 말이다.
<술,전쟁같은...>에서도 느낀 것인데 이 작가 정말 글을 잘 쓴다. 유머감각에 솔직함,날카로운 분석에 따른 명료함과 넘치지 않는 균형 감각, 설득력과 ,그리고 무엇보다 루실에 대한 사랑이 곳곳에 넘쳐나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 역시 쉽게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선 역시 그녀 답군 했다.
<술 ,전쟁같은 사랑의 기록>의 표지에 보면 캐롤라인 냅과 루실의 사진이 박혀 있다.이 책을 읽고 나니 왜 냅이 자신의 프로필 사진에 개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 이해가 됐다.아,이 개가 루실이로군요.정말 멋진데요? 그녀에게 한마디 던져 본다.그녀는 2003년 페암으로 별세했다고 한다.이 책에서 냅은 주인이 병이 들었을때 그 주인을 하루종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내도,자식도,부모도 아닌,개라고 말한다.그녀가 외롭고 힘들게 죽어갈 때 루실이 그녀를 지켜 주었을거란 생각은 얼마나 나를 안도하게 하는지.늦게 나마 그녀의 명복을 빌어본다.그 처절했던 삶을 뒤로하고 이젠 평안히 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