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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 상
A.J.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기전 괜찮은 책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제목도 제목이거니와 목자를 연상하게 하는저 촌스런 표지라니...누가 읽겠다고 집어 들까 싶었다.냉소가 유일한 삶의 자세고,내 맘대로 거침없이 사는게 쿨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서 성경 말씀대로 1년간 살아보겠다니?흠,자진해서 <미친 척하고>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할거란게 눈에 훤했다.요즘 같은 세상에 종교에 미친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 할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그래서 책을 받아 들기 전 내 걱정이 저랬던 것이다.수작이면 어떡하지? 잘 설득할 수 있을까?자신이 없는데...
그리고 책을 펼치자 마자 난 내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좋은 책을 만나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부담감이 생기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처참(?)하게 한권으로 추려 준 바 있는 <한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저자 A.J.제이콥스가 이번엔 영적인 도전에 나섰다.첫아들 재스퍼가 태어나자 간이 콩알만한 아버지 되어버린 그는 아들이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로 적잖이 고민이 되었다고 한다.그런 부성애 가득찬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니 자연스럽게 눈길이 종교에 머물더라나? 자유와 방종을 구별 못하는 사회속에서 자라날 아이들의 혼란을 생각해보니 어떤 기준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잘 알지 못하면서 어찌 아이들에게 지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이미 지적인 도전을 끝낸 경험이 있던 그는 호기심 백배, 의무감 천배하여 본격적으로 영적인 도전에 나선 것이다.한번 했다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의 그가 성경을 따라해 보겠다니, 내가 만약 그의 친구였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렸을 것 같은 해괴한 아이디어지만, 친구가 아닌 관계로 어떻게 그가 이 프로젝트를 완성시켜 나갔을 것인가만 궁금했다.비종교적인 유대 가정에서 자라난 불가지론적 성향의 발칙한 뉴욕커라는 그가 이 과정을 통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도 궁금했고.과연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남들의 비웃음에도 진지하기 짝이 없는 열정으로 밀어 붙이던 그는 믿음직스러웠을 뿐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밌는 책이다.성경 말씀대로 살아보기라는 기괴한 프로젝트가 이렇게 명랑 일지로 탄생할 지 누가 알았겠으리만은 정말로 그랬다.이유는 적당히 삐딱하고 대충 살던 그가 제대로 살아보려 하니 걸리는게 한두가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걸 황망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어려운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유쾌한 도전쯤으로 받아 들이고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은 끝내 존경심을 불러 일으켰다.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문제는 사태를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 하는 마음 가짐에 달린 것이겠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거기에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완성되어진 책이란 점에서도 믿음직스러웠다.그는 근본주의,문자주의,랍비,전통 신학자,목사,성경학 교수,사이비교주등을 부지런히 만나면서 성경 말씀대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는다.그 덕에 마치 종교 백화점에 가서 모든 상품을 대강 둘러 본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왠만한 종교는 다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그들의 생각과 사고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내 종교의 한계를 긋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웠다.
소위 독실하다고 자처하는 신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가슴 아픈 말이지만 그들 중 진심으로 성경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 점에서 난 자신을 불가지론자라고 밝히면서도 성경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나서는 그의 모습이 무척 신선했다.거기에 그 과정을 소모적인 실험에 그치지 않고 가뿐히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모습에는 놀랄 수밖에는 없었고...재치있는 유머와 진지함,선량함, 부성애,지성, 인간애등 작가의 좋은 성품들이 그의 외골수적인 개성과 잘 어우러져 어디를 펼치고 읽어도 미소를 지으면 읽게 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포장하지 않는 진솔한 영성 체험을 보게 될 줄 몰랐던 나로써는 흥미진진하고 흐믓한 체험이었다.
다 쓰고 보니 어째 나의 걱정이 그대로 현실이 되버린 느낌이다.약간 비관이 되긴 하지만,어쩌랴.
할 수 없다.그래도 시도는 해 봤으니 이젠 배째라는 자세로 나갈 수 밖엔...
아쉽지만 그것이 내 한계임은 한탄하면서,이 책을 제대로 알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제목에 속단하지 마시고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어줍잖은 리뷰가 부끄러울 만치 좋은 책이니 말이다.